병상에 눕기 전까지, 노인들의 존재감은 살아있습니다.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고 해서 동정이나 보살핌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니지요. 복지 시설의 기계적인 매뉴얼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감정이 있는 응원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응원의 함성으로 힘을 얻듯이 그들은 삶의 현장을 느끼고 확인시켜 줄 가족과 사회의 응원가가 필요한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젊은 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열심히 떠들어댑니다. 오죽하면 치매 노인 센터에서 노인들이 “저놈만 오면 시끄러워서 혼이 쏙 빠진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는 거예요.
여기서도 큰 소리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우선 숙제 검사를 하는데, 노인들의 눈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묻습니다. “일기 쓰셨나요?” “네!” “무얼 쓰셨어요?” “하루 일과를요.” 눈길이 다른 노인으로 옮겨 가며 “무얼 하셨나요?” “걸었어요.” 그의 눈길이 내 눈앞에 멈췄을 때 그는 눈으로 물었습니다. “?” 나는 “….” 망설이고 대답을 못하는데, “좋습니다. 쓸 게 없으면 무얼 먹었는지만 쓰셔도 됩니다.” 이어서 신체 활동을 위한 스트레칭, 순발력과 집중력 훈련을 위한 놀이들이 숨 돌릴 겨를 없이 진행됩니다.
수업이 끝나면 90도로 인사하고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주먹 인사까지 나누며 배웅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놀이 기구가 가득 든 큰 상자를 끌고 다음 복지기관으로 옮겨가죠. 그의 열성적 태도가 봉사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든, 직업상 몸에 밴 친절이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는 노인들의 혼을 쏙 빼놓고 나는 그를 통해 세상의 온기를 느낍니다.
한밤중에 잠이 깨자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의 눈 물음에 대답했어야 했다고. “썼어요?” “네.” “무얼?” “아무튼 아무거나.” 지금 이 일기를 쓰는 것은 그의 눈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그의 응원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