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대소하게 되는 책을 만난 건 오랜만이었다. ‘장서의 괴로움’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에 의하면 개인 장서가 3만 권을 넘어 13만 권에 이르면 ‘책은 집을 파괴한다.’ 책 무게 때문에 벽이 기울고 2층 바닥이 뚫리면서 사람이 아래로 추락한다. 일본 목조 집에서 실제 일어난 사고다.
화재로 만권의 책이 불타고 지진과 해일로 장서가 훼손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동경 대공습으로 평생 모은 수만 권 장서가 무릎까지 쌓이는 하얀 재로 바뀌는 장면을 목격한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종이는 탔는데 활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느끼는 일종의 환시(幻視) 체험을 고백했다.
집 모든 곳에 장서가 쌓이면 집이 미로(迷路)가 된다. 수만 권 장서가 모든 생활 공간을 침범하면서 비어 있는 공간은 침대만 남는다. 시간이 흘러 언제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책의 벽이 침대조차 위태롭게 포위한다. 책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객(客)이 된다.
이 지경이 되면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본인도 알 길이 없다. 필요한 책을 장서의 무덤에서 찾는 게 불가능해져 같은 책을 다시 사고 또 산다. 견디다 못해 수천 권을 헌책방에 넘긴 직후에도 장서가 줄어든 흔적이 없어 스스로 경악한다. 그러고도 ‘책을 팔아 버린 다음 날, 또 산다.’ 그야말로 병적 증상이 아닐 수 없다며 오카자키 다케시는 한탄한다.
수만 권 가진 장서가가 사람이 아니라 ‘책이 사는 집’을 결국 짓게 되는 까닭이다. 책 무게 때문에 표준 건축비보다 2~3배 소요되므로 극소수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다. 따라서 ‘적당한 장서량은 500권’이라는 게 오카자키 다케시의 권고다. 나아가 그는 ‘지상 최대의 이상적 서재는 교도소’라고 주장한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할 장서도 없으므로’ 허용된 몇 권의 서적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촌철살인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깔깔대면서 ‘장서의 괴로움’을 읽었지만 ‘책상 주변에 쌓인 책만 쓸모 있다’는 그의 말은 백번 맞다. 오카자키 다케시는 나와 동년배인 출판 평론가인데 ‘장서의 괴로움’에 대한 푸념이 ‘연애의 괴로움’에 대한 투정처럼 교묘한 ‘자기 자랑’이라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굳은 의지’로 끝까지 ‘괴로워하며’ 살 것임을 다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오카자키 다케시나 예시된 일본 장서가들에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지만 나름 ‘장서의 괴로움’을 겪었다. 퇴직 때 연구실 장서가 큰 문제였다. 봉직한 대학을 비롯해 공공도서관과 아파트 도서실도 책을 받지 않았다. 연구실을 개방해 학생들이 수천 권을 가져갔고 수천 권을 집에 다시 가져온 후에도 천 권 이상이 남았다.
연구실 청소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니 남은 책은 그대로 둬도 된다고 해서 수고비를 드렸다. 아마 그 책들은 헌책방으로 가거나 폐지로 직행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연구실 앞 복도에 수북이 쌓인 손때 묻은 책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학교를 떠났다.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오카자키 다케시처럼 책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
이사 후 집안 곳곳에 책장을 만들어 책을 겨우 수납했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몇 달간 아파트 재활용장에 책을 수십 박스 버렸음은 물론이다. 전자책은 내게 출구가 아니다. 전자책은 훨씬 빨리 훨씬 많이 읽게 되지만 종이책의 물성(物性)을 대체하진 못한다. 나도 계속 장서 때문에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물론 ‘자기 자랑’이다.
그래서 다시 결심한다. 읽지 않을 책은 더 이상 사지 않기로. 서점 가는 것도 자제하리라고. 이젠 시대에 맞게 전자책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그리고 더 치열하게 책들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다짐이 작심삼일이라는 사실을. 이것도 교묘한 ‘자기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