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꽤나 의아한 기분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을 마신다’라는 말 안에는 술 마시기란 2인 이상이 하는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내재해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달까.
혼술 생활 어언 15년 차, 가장 인상적인 혼술을 꼽자면 기찻길 아래에 있는 술집에서였다. 그러니까 기차가 덜컹덜컹 다니는 아래, 기찻길 아래 술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간 기찻길 술집은 선술집이기도 했다. 그곳은 선술집이자 와인바였다. 선술집이자 와인바인 동시에 가게 가득히 있던 와인과 사케를 사거나 바로 그 자리에서 마실 수도 있는 집이었다. 꽤나 오래전, 도쿄에서였다.
한참 전의 일이라 술집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도쿄역과 유라쿠초역 사이의 어딘가였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원형으로 된 작은 테이블만 있는 그 술집에 빨려들 듯 들어간 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름이나 간판의 형태나 조도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서서 아마 네 잔의 와인을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레드 와인 두 가지, 화이트 와인 두 가지, 잔 와인으로 마실 수 있는 건 이렇게 총 네 가지였으니 모두 마신 것이다.
작년에 도쿄에 갔을 때 이 집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유라쿠초 근처를 지나던 와중에 뭔가 급한 일이 생겨 숙소로 돌아와야 했고 다른 날엔 그쪽으로 가지 못했다. 그날의 애석함이 떠올라 도쿄에 혼자 사는 여자가 쓴 ‘인생은 혼술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아마도 술꾼일 테니 기찻길 아래 있는 술집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나는 머리말을 보고 놀라고야 만다. 혼술을 애타게 ‘동경’하다가,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어 ‘수행’하다가, 그 ‘비기’를 쟁취한 이야기라기에. 응? 정말 그녀는 ‘비기’라고 썼다! 아니, 혼술을 그렇게까지?
일본에서 내가 혼술을 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혼자였으니까. 가는 술집마다 혼술하는 사람이 꽤나 많아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는데, 혼술하는 여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갔던 술집이 혼술하는 여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종류의 술집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일본 여자들은 왜 혼술을 하지 않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여겼던 게 떠올랐는데, 이 책을 참고하자면 일본의 분위기가 그런 것 같기도. 언론인이었던 ‘인생은 혼술이다’의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현실적으로 술집에서 여성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음. 일본 술집에서의 나는 눈치 없이 행동한 걸까라는 생각을 뒤늦게 하며 이 책을 읽었다. 사케를 취재한 인연으로 사케에 입문했다는 그녀가 추천하는 사케도 적어두었다. ‘바람의 숲’이라는 뜻의 가제노모리와 ‘가을 사슴’이라는 뜻의 아키시카. 곱기도 하지. 혼술 비기 12조 부분을 보는데 비기 11까지는 너무도 상식적이었다. 실천하려고 애쓰진 않았으나 모두 하고 있는 것들이랄지. 첫 술은 빨리 주문하라, 안주는 천천히 주문하라, 스마트폰 하지 마라 등등. 그런데 비기 12조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는 이야기. 혼술 역시 혼자만의 술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달까. 혼술 하시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 여기에 적어두기로 한다.
“낯선 옆 사람의 행복을 빈다, 그게 바로 혼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