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한국인의 ‘국밥 소울’은 국에 밥을 말기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 골목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 우거지 해장국일까? 소고기뭇국? 낡은 간판의 허름한 국밥집에 들어서면 국물 자작한 깍두기와 아삭한 배추김치, 시원한 오이 고추, 된장이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온다. 은색 스테인리스 쟁반 위로는 보글보글 끓는 검은 뚝배기. 이 모든 것이 국밥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굳어진 이미지가 무색하게 최근 새로운 흐름(?)의 ‘신(新)국밥’이 등장하고 있다. 전통 국밥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국밥인 듯 국밥 아닌 국밥 같은 너. 이것을 ‘뉴웨이브 국밥’이라 부른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올해 외식업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는데. 누구냐, 너?

용산 백랑국밥

서울 연남동에 있는 한 국밥집. 입구에 들어서면 ‘ㄷ’ 자 모양 좌석이 보인다. 10명 안팎이 앉으려나. 오마카세라도 내줄 것 같은 일식당 모양새. 그러나 그릇에 담겨 나오는 건 다름 아닌 국밥이다. 가운데 자리한 파 고명, 얇게 썰어 올린 선홍색 돼지고기가 활짝 핀 꽃처럼 탐스럽다. 앞치마 차림의 셰프가 정성스레 그라인더로 갈아 음식 위로 통후추까지 뿌려 준다.

용산에 있는 또 다른 국밥집은 국밥에 부추 페스토를 올려 낸다. 유자 새우젓, 청양고추 콩피 오일 등을 “취향껏 넣어 드시라”며 함께 내주기도 한다. 비름나물·케일 등으로 만든 초록빛 오일을 둘러 주는 집, 트러플을 넣은 순대 국밥집…. 한우나 항정살, 특수 부위, 유기농 채소 등 값비싼 재료만 사용한다는 국밥집도 등장했다.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다. 육수의 진한 정도와 고기 부위, 맵기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같이 비주얼이 고급스럽다는 특징이 있다. 식기 역시 투박한 뚝배기가 아닌, 놋그릇이나 도자기. 덕분에 ‘혼밥’ 해도 궁상맞지 않다. 소셜미디어(SNS)에 사진을 올리기도 좋다. 그리하여 도장 깨기 하듯 ‘국밥 투어’를 하기도 한다. 과거 국밥의 맛에만 집중했다면 최근엔 인테리어나 플레이팅까지 세련된 국밥집을 찾아다니는 것. 높게는 2만원 가까운 가격이지만 고급화된 이미지 덕인지 “이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서울 북촌 안암의 돼지국밥. 비름나물·케일 등으로 만든 초록빛 오일을 둘러 준다. /업체 제공

간단히 끼니를 때우거나 해장을 하기 위해 찾는 것은 아닐 터. 구태여 이런 국밥집을 찾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익숙한 음식에서 오는 새로움’을 매력으로 꼽는다.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끼며 먹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는 것. 완전히 새로운 음식은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물과 밥, 고기로 구성된 국밥이기에 생소한 외관 대비 실패할 확률도 작단다. 10만원을 훌쩍 넘는 고급 레스토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지만 ‘비싸 보이는 한 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식당에 다녀온 한 청년은 이런 후기를 남겼다. “이것은 ‘파인 다이닝 돼지 곰탕’이다.”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 김치와 깍두기를 사이드 메뉴로 내 주고, 후식으로 식혜 한 잔을 제공하는 ‘1인 다이닝’ 국밥집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