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임에 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열다섯 명 정도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 평소 알고 지낸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가 모르거나 방송 혹은 책으로만 이름을 접한 이였습니다. 모임을 주선한 이는 자칫 서먹해질 분위기를 걱정했는지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며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3만원 이하의, 더는 쓸모없어진 소소한 물건 하나씩을 준비해 달라는 것. 새로 사지는 말고 갖고 있는 것으로.
그런 물건을 찾기 위해 방을 뒤졌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책이었습니다. 700쪽이 넘는 양장 책은 3만원 정도 나가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습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어야 한다는 마음의 짐까지 전가하는 기분이 드는 탓입니다.
다시 책장을 등지고 물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만만한 것은 술이었습니다. 지난겨울 시인 이육사의 고장 경북 안동에서 구한 청포도 와인. 가격도 딱 맞춤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말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사은품처럼 대만의 한 박물관에서 사 온 유물 모형을 함께 챙겼습니다.
드디어 약속 당일, 식사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제비뽑기로 서로 준비한 것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인형, 향초, 돗자리, 고화질 명화 DVD, 기타 조율기, 해외 미술관 기념품, 손수 만든 공예품…. 저마다 가져온 물건이 새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하나하나 값을 따지자면 3만원 수준이었지만 기쁨과 재미는 몇 곱절이었습니다. 쓸모가 있든 없든 의미가 깃든 선물이니까요. 날로 물가 치솟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3만원이면 좋은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핸드크림이나 로션을 고를 수도 있고 꽃이나 케이크를 살 수도 있습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금액입니다.
며칠 밤 공들여 쓴 시 한 편도 3만원 정도 합니다. 원고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5만원을 주는 곳도 있고, 많게는 15만원까지 주는 곳도 있지만 지금도 일부 문예지는 3만원을 시 한 편 값으로 책정합니다. 너무 적다고 불평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 많지 않은 독자지만, 여전히 시를 읽고 타산이 맞지 않는 문학 잡지를 발행하는 이들의 커다란 의미가 깃들어 있는 금액인 덕분입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함민복 시인은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긍정적인 밥’)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일수록 값이 저렴해야 합니다. 3만원이면 대형 마트에서 쌀 10㎏을 살 수 있고, 중량이 비슷한 천일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 한 편도, 마음 담은 선물 하나도 단돈 3만원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