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우리가 같이 서 있으면 너무 반짝이니까 퐁당퐁당 서야 해요” “여기가 하이라이트니까 여기까지 더 불러야 해요”라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26일 서울 흑석동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소태산홀. 친한 친구들인가 싶었는데 복장이 특이했다. 승복과 로만 칼라 셔츠 등을 입은 이들이 이내 목을 가다듬고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나는 문제~ 없어”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만남중창단’ 멤버인 성진 스님, 박세웅 교무, 하성용 신부, 김진 목사. 스님과 신부는 “사진이 너무 반짝일 수 있다”며 한칸 떨어져 섰다. 4대 종교 성직자가 함께 팀을 꾸린 중창단은 세계 최초이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이들은 세계 최초 4대 종교 성직자로 구성된 ‘만남중창단’. 성진 스님(불교), 김진 목사(개신교), 하성용 신부(천주교), 박세웅 교무(원불교)가 2022년 창단했다. 지금까지 진행한 토크 콘서트와 공연이 200회를 넘어섰다. 작년 5월 우즈베키스탄과 8월 미국 뉴욕 등 바다 건너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다른 종교를 가진 국가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세상, 종교가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화합을 노래하는 종교인들을 만났다.

◇다르지만 함께

작년 초 이들이 낸 책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서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다른 종교라는 것은 한 바구니가 아니라 양손에 들고 있기에도 불안해집니다.” 기도할 때 찾는 신의 이름이 다른 사람들, 양손에 들고 있기에도 불안한 다른 종교가 왜 ‘함께하는’ 길을 택했을까.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물었다(답변은 종교별 성직자 명칭으로 구분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왜 화합해야 하나요?

스님 “지금까지 2000년 이상 종교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았어요. 과거엔 죽고 사는 전쟁까지 벌였지만 종교가 하나가 아니니 이제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교무 “해외에선 기적에 가까운 현상인데 한국에선 다른 종교가 자연스럽게 섞여 살죠. 이런 K종교의 모델이 사회 갈등도 줄일 수 있는 기반이 되고요.”

-K종교라니, 우리나라는 뭐가 다른가요?

목사 “이슬람교나 불교, 개신교, 가톨릭을 국교로 정한 나라가 많지요. 한 가족 안에서 엄마는 성당 가고, 아빠는 절에 가고, 자식은 교회 가는 나라가 몇 없어요. 한국은 의외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성숙도가 높습니다. 다른 종교와 화합하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문화가 일반 사회에 적용되면 세상도 더 나아질 거예요.”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나요?

스님 “악플도 있죠. 특히 목사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유일신교인)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신 것 같아요. 이젠 신자분들도 저희에게 다른 분들의 안부를 묻곤 해요. 저한테 목사님 안부를 묻고, 교무님한테 제 안부를 묻는 식으로.”

만남중창단 공연의 특징은 유난히 눈물 흘리는 청중들이 많다는 것. 서로 다른 종교지만 의지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람이 많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성직자들이 모인 중창단이지만 세속의 노래를 합니다.

신부 “특정 종교에 갇히면 안 되니까요. 만남중창단의 목적은 ‘종교 간 화합, 종교와 대중의 만남’이에요. 종교가 없는 대중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용기를 줄 수 있는 대중가요를 선택합니다.”

주요 레퍼토리는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넌 할 수 있어’ ‘나는 문제없어’ ‘사노라면’ 등이다. 작년 8월 미국 뉴욕에 있는 UN 처치센터에서 부른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 국내에선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일랜드 민요를 편곡해 가사를 붙인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의 곡이다. 무대는 가리지 않는다. 성당, 사찰, 교회, 대학, 뉴욕의 길거리와 쇼핑센터에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 안의 고민은 뭔가

-해외의 반응은 한국과 다르던가요?

신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한국에서도, 그곳에서도 이방인이잖아요. 저희가 아리랑을 불렀더니 한국어를 잊은 분들도 따라 불렀습니다. 저희도 따라 울어 버렸지요.”

스님 “미국에서 9·11 테러가 났던 무역센터 지하 쇼핑몰에서 즉석 버스킹을 했는데 한 외국인이 다가와 ‘당신들이 내 마음을 울렸다’고 하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은 동양 종교까지 함께하는 모습을 신기해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어떤 걸 주로 묻나요?

교무 “대학생은 취업·학업·연애, 어른들은 자녀나 직장 문제죠. 처음 보는 저희에게 일상의 문제를 물으시는 걸 보고, 이분들이 평소 마음을 열고 온전한 대화를 하기 어려웠구나 싶었어요.”

목사 “어떤 청년은 ‘어릴 때 목사님한테 상처를 받아서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하고, 또 다른 청년은 ‘학교 선생님이 매주 주보를 가져오라고 혼내서 상처를 받았다’더라고요. 제가 대신 ‘미안하다’며 안아줬더니 울어요.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오랜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죠.”

만남중창단의 토크 콘서트와 공연에서는 유달리 눈물 흘리는 청중이 많다. 한국말 모르는 외국인도,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도 이들의 노래에 훌쩍인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거나 화음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같은 파트에 2명 이상이 마이크를 입에 댔다가 눈치 보며 떼기도 일쑤. 토크 콘서트에서도 종교와 상관없는 일상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인데 무엇이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종교는 다르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다. '우리 말을 듣는 사람의 행복'. 이들은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추구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의견을 따라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성직자 강의나 노래에 호응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스님 “저희가 노래로 승부를 볼 실력은 아니기 때문에 ‘음 이탈이 돼도 목사님이, 신부님이 잡아주겠지’라고 믿고 신나게 불러요. 각 종교 권위자가 서로 의지해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도 마음의 벽을 내려놓는 것 같아요.”

목사 “무의식 속에 ‘저 사람들도 벽을 허물었네’라는 생각이 드나 봐요. 스스럼없이 묻다 보니, 무방비 상태로 센 질문을 받기도 하지요, 하하.”

가장 인기 있는 답변자는 김 목사. “전생이 있나요?” 같은 질문에 성진 스님이 “그건 우리 쪽이니 이리로 오세요”라고 답하면 객석에 웃음이 터진다. 의외로 ‘연애’ 관련 질문은 싱글일 수밖에 없는 하 신부에게 몰린다고. “연애가 힘들어요”라는 말에 “그럼 헤어지세요”라는 답변을 내놓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듣고 싶은 답은 뻔하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럼에도 하 신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진짜 신부님 맞나요?”다.

“종교가 달라 결혼이 깨질 위기”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뭐라 답할 거냐고 묻자 누가 먼저랄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답변이 나왔다. “종교 때문에 헤어질 거면 다른 걸로도 헤어져요. 가만히 있는 종교 갖다 붙이지 말고 사랑이 식은 거 아닌지 들여다봐요!”

만남중창단 멤버들이 함께 쓴 책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출간 기념 북 콘서트. /만남중창단 제공

◇각자로 공존하는 법

평생을 종교에 귀의해 살아가는 성직자에게 종교란 삶 그 자체이기 마련이다. 서로 믿는 신(神)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마저 의심하는 세상에서 다른 종교의 성직자 4명이 함께할 수 있는, 그들 사이의 믿음은 뭘까.

-스스로 변화한 부분도 있나요?

스님 “노래가 확실히 늘었고요, 하하. 저는 다른 종교를 모른 채 스님이 목사님보다 훌륭하다는 유일무이한 종교적 경험으로 이 길을 선택했는데 다른 분들도 각자 숭고한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됐지요.”

목사 “사실 종교인들이 대중을 이해하는 수준이 추상적이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옳은 말도 삶에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유치해 보이지만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갖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종교가 더 바닥으로, 현장으로 가야 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각자 다른 종교라는 게 실감되는 때가 있다면.

교무 “원불교나 불교는 술이 안 되는데 신부님은 드실 수 있고, 스님은 육식을 자제하시니까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잠깐 깨닫곤 하죠(웃음).”

신부 “제가 교무님한테 술을 먹여서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잖아요. 서로를 이해하면 충돌하지 않는 선을 정할 수 있습니다.”

-네 분의 화합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목사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죠. 종교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 이야기 듣는 분들의 행복’으로 같습니다. 싸움은 의견을 내세우는 척 욕심을 채울 때 생기는데 저희는 추구할 개인적 욕심이 없잖아요.”

스님 “이견은 당연히 있지만 누구의 의견을 따라도 상관이 없단 걸 알아요. 공동의 목표가 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추구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죠.”

-성별이나 정치 성향, 개인 간 입장 차이로 인한 갈등이 심각합니다.

목사 “우리 사회는 대화의 힘이 부족해요. 각자의 의견만 주장하는 건 말이 오가는 것일 뿐 대화가 아니에요. 저희가 각자의 종교를 존중해 대화하는 것처럼, 각자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무 “방치하고 관망하자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문제죠.”

-꼭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스님 “국회에서 의원들 모아놓고 토크쇼 한번 하고 싶습니다. 원효 스님이 개시개비(皆是皆非),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관점을 가져야 유연한 대화가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계급장 떼고 대화하자, 이렇게요. 하하.”

목사 “맞아요. 정치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대화를 하는 게 실시간 노출되면서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들이 얼마나 대화를 못 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말해주고 싶어요.”

때로는 한목소리로, 때로는 각자 답을 하는 이들을 보며 “만남중창단은 종교의 통일이 아니라 종교의 화합을 추구한다”는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같은 하나가 아니어도 각자 굳건하게 존재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통일이 아닌 화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