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중앙선을 따라 북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늦은 점심이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큰 건물도 없이 황량한 이곳에 해물찜을 파는 곳이 있었다. 하얀 간판에 적힌 글자는 ‘원당 해물탕 해물찜’이었다. 원당역에서 2000년에 개업했다고 하니 이제 25년쯤 된 셈이다. 2017년, 지금의 한국항공대역(옛 화전역) 앞으로 옮긴 가게는 넓었다. 점심·저녁 시간에는 사람이 꽉 찬다고 했다. 그러나 한바탕 사람이 빠져나간 가게는 한산했고, 한쪽에서는 종업원들이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부산 살 때는 해물찜을 돈 주고 사 먹은 적이 없었다. 시장에 가면 ‘해물탕 거리’라고 해서 작은 소쿠리에 해물을 한가득 담아 팔았다. 갯가재, 바지락, 홍합, 미더덕, 대구 정소, 꽃게 같은 자잘한 해물을 한 봉지 사면 그날 저녁은 작은 파티였다. 찰랑거리게 물을 넣으면 해물탕이었다. 아버지는 탕을, 우리는 찜을 더 반가워했다. 부산에서 해물은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만큼 충분히 쌌다. 갯가재를 까고 홍합 살을 바르는 그 귀찮은 일도 재미가 있었다. 옆에 수북이 껍데기를 쌓아놓고 먹노라면 입과 손에 빨간 물이 들었다.
서울에 와서 해물찜 같은 음식을 멀리하게 된 이유는 그만큼 마음 터놓고 퍼질러 앉아 격 없이, 더럽게 음식을 먹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에 앉으면 숟가락과 젓가락 밑에 휴지를 깔고 물티슈를 물 쓰듯 쓰며 옷에 고춧가루가 튈까 봐 앞치마를 하는 법석을 떨게 된다. 나는 때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지하철에서 인생을 다 써버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점심 한 끼를 위해 치러야 하는 이 의식도 마찬가지다.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굳이 해물찜을 먹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런데 굳이 해물찜을 찾아 고양 언저리까지 와서 한가한 식당 한쪽에 앉았다.
해물찜을 기다리며 조금은 ‘두고 보자’ 하는 아니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덩치의 주인장이 그만큼 거대한 접시를 들고 오며 “해물찜 나왔습니다”라고 걸걸한 목소리로 흥겹게 말했다. 마치 본인이 먹는 음식인 것처럼 기쁘게 인사하는 그이의 모습에 마음이 반쯤 풀어져 버렸다. 낙지와 꽃게, 홍합, 대구 정소, 미더덕, 새우 등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해물이 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집게와 가위를 들었다. 의자를 바싹 당겼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팔뚝을 걷었다.
낙지 머리를 잡고 가락을 뽑듯 쭉 들어 올렸다. 구불구불 기다란 낙지가 곧 허공으로 떠올랐다. 큰 낙지를 잘라 입에 넣었다. 해물찜은 물기가 생기면 안 된다. 물기가 흥건하다면 오래 익혔다는 뜻이고 그만큼 해물은 질겨지고 맛이 빠진다. 낙지는 질긴 느낌 없이 탱글하고 부드러웠다. 주방에서 누군가가 쉴 새 없이 어깨와 팔뚝을 상해 가며 냄비를 흔들고 주걱을 저었다는 뜻이었다. 전분을 풀어 양념이 단단하게 재료에 달라붙었지만 또 지나치게 풀어져 엉기거나 끈끈하지 않았다. 고춧가루가 아낌없이 들어갔지만 또 과하여 그것만 먹는 듯한 맛도 아니었다. 재료와 재료 사이를 잇는 감칠맛은 재료 자체에서 나온 단맛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젓가락으로 감당이 안 되는 못생긴 해물을 손으로 잡고 입으로 뜯었다. 매일 이 집에서 무친다는 겉절이도 올렸다. 매콤하고 달달한 맛이 춤을 추듯 입안에서 혀와 입천장, 입바닥 사방으로 붙고 떨어지고 한데 엉키다가 목구멍 저 뒤로 넘어갔다. 식도를 타고 물컹물컹 해물이 흰쌀밥과 함께 뜨끈한 기운을 밀고 위장까지 밀고 들어가는데 저 밑 단단한 곳까지 다다를 쯤에는 수십 년 전 느꼈던 익숙한 포만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그럼에도 끝나지 않았다. 해물찜과 같이 나온 뽀얀 홍합탕으로 속의 빈틈을 메웠다. 남은 양념과 흰밥을 비벼 철판에 볶고 날치알과 김가루를 뿌려 만든 볶음밥을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긁었다.
음식을 가득 해주는 이의 마음은 비슷하다. 호텔 레스토랑에 앉은 것처럼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터질 것같이 부푼 봉지에 콩나물 한 움큼을 또 넣어주던 시장의 아낙들처럼,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해 배를 부르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듯 해물들이 한껏 모여 있던 그 찜 한 접시는 그렇게 밥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원당해물탕해물찜: 해물탕·해물찜 소 4만6000원, 볶음밥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