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온 이 글이었다. “모든 전직 천사에게 바친다. 특히 야스지로, 프랑수아, 안드레이에게.” 자기가 존경하는 감독인 오즈 야스지로와 프랑수아 트뤼포와 안드레이 줄랍스키를 전직 천사라고까지 말하는 이런 사랑이라니.

사랑도 좋지만, 나는 사랑보다도 ‘전직 천사’라는 말에 꽂혔다. 그 말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전직 천사인지 현직 천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사인 것 같기는 해서. 천사가 아니라면 그렇게 나의 영혼을 뒤흔들 수는 없는 것이다. 영혼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내 마음에서 그것을 끄집어내 울렁이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주의하시라. 그는 천사일지도 모른다.

아열대 기후로 에인절스 셰어가 15% 가까이 일어나는 대만 위스키 ‘카발란’. /카발란위스키

지금 내가 이렇게 천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위스키가 요즘 내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위스키와 천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천사의 몫’이라고 하는, 오크통에서 증발하는 위스키 원액에 대해서도. 천사에게 위스키를 바치면 천사는 자신이 가져간 몫만큼 맛이라든가 향을 대가로 지급하는 건가라는 낭만적인 생각도. 대가 없이 위스키만 취하면 그게 과연 천사일까 싶은 것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는 염치없는 천사도 있을 수 있겠으나 위스키에 깃들이는 천사라면 그럴 리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세상은 속고 속이는 곳이나 술에는 소음이나 치졸함 대신 낭만과 아름다움이 깃들길 바란다.

시간을 두어 달 전으로 돌리면, 비행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내가 있었다. 꽤 여럿이 조니워커 블루를 주문하는 소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던 나는 갑자기 위스키를 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고개를 돌렸더니 마침내 옆을 지나던 스튜어드가 있었고, 나는 카발란이 있느냐고 묻게 된다. 조니워커 블루에 대해서는 평범하게 주문을 받던 그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데, 상당히 반색하며 이렇게 되물었던 것이다. “꺄발란요?”

상당히 과장된 된소리였다. 대만 현지 발음이 카발란인지 꺄발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스튜어드가 카발란을 애호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참 좋은 주문이었습니다’라고, 또 ‘이 술은 제가 보증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카발란을 마셔본 사람일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역시 카발란 아닙니까?’라는 공모자의 연대를 표하려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그는 위스키를 좋아하며,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 내고 싶으며, 위스키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발란이 맛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카발란을 달라고 한 것인데, 판매자까지 저러니 카발란에 대한 기대는 한껏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카발란으로서는 불리해졌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기대 수치를 한껏 올려놓은 가운데 만족감을 주기란 웬만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솔리스트 비노 바리크, 캐스크 스트렝스, 55.6도. 로열블루색 라벨에 쓰인 정보는 이랬다. 위스키색이 아니라 코냑색에 가까운 비노 바리크를 보면서 일단 색에 매혹되었다. 뭐랄까, 나는 이런 짙은 밤갈색이라고 해야 할지 고동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색이 자연이 창조한 색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맥을 못 추는 편. 치펀데일이 만든 드레스 장이나 명마로 유명한 양주(涼州)에서 나는 말의 색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러울 일인가. 캐스크 스트렝스란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지 않고 원액 그대로인 술을 말하는데 너무 부드럽게 흘러들어서 60도에 육박하는 고도수가 느껴지지 않는다. 카발란을 폭식한 천사가 베푼 은혜일까 싶을 정도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천사의 몫’인 에인절스 셰어(Angel’s Share)가 2% 정도인데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는 15% 가까이 일어난다고. 폭리를 취한 대가로 이런 농후함을 선사한 천사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