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돈을 위해 서로를 속이고 죽이면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약육강식의 생존 게임을 벌이는 ‘오징어게임 시즌2′ 이야기다.
다스 베이더와 같은 교활하고 잔인한 역할을 맡은 ‘프론트맨’ 이병헌은 오징어게임을 총괄한다. 게임의 질서를 유지하느라 시종일관 냉혹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에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숨겨져 있는 캐릭터다.
오징어게임의 첫 번째 미션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아슬아슬하게 생사를 오가며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프랭크 시내트라의 감미로운 재즈곡인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흐른다. 이병헌은 참가자들의 죽음을 무심하게 화면으로 모니터하며 온더록 잔에 위스키를 따른다. 따로 얼음을 넣지는 않았다. 그는 위스키를 천천히 음미하며 게임을 관전한다. 사람들의 운명이 엇갈리던 그 순간, 이병헌은 어떤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글랜알라키 21년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줄여서 CS) 제품이다. 최종 병입 단계에서 물을 타지 않은, 알코올 도수 51%대 싱글 몰트 위스키다. 글랜알라키는 코로나 기간, 국내에 캐스크 스트렝스라는 개념과 함께 셰리 위스키의 인기를 이끈 증류소 중 하나다.
글랜알라키 21년 CS는 스페인 헤레스 지방의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enez)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된 제품이다. 현재 총 5종류의 배치(Batch)가 출시됐지만, 2024년에는 라벨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이병헌이 마신 제품은 그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맛일까.
향은 건과일 위에 시나몬과 코코아 가루를 뿌린 듯하다. 위스키를 입안에 한 모금 머금으면, 두께감 있는 초콜릿 크림이 밀도 있게 밀려 들어온다.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떠먹는 느낌이랄까. 모난 구석 없이 기분 좋은 한잔이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프랭크 시내트라의 곡에 이질감이 없음을 확인했다.
글랜알라키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마스터 블렌더, 빌리 워커의 작품이다. 망해가거나, 망한 증류소를 인수해 부활시키는 게 ‘취미’인 인물. 벤리악, 글렌드로낙, 글렌글라사 등 이름만 들어도 굵직한 스카치 증류소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빌리가 만지면 죽어가던 유령 증류소도 마법처럼 살아나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뀐다.
글랜알라키도 무명에 가까운 증류소가 그의 손을 만나 재탄생한 사례다. 유난히 셰리 위스키에 진심인 곳. 아마 빌리 워커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일 것이다.
‘오징어게임2‘에서는 올드 풀트니라는 제품도 화면에 잠깐 비친다. ‘네모 부대장’이자 장기 밀매 업자 역할을 맡은 배우 박희순이 마시던 위스키. 병의 실루엣과 위스키 색으로만 봤을 때 올드 풀트니 18년으로 추정된다. 15년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 후 3년간 올로로소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이다. 올드 풀트니는 스코틀랜드 북동쪽 해안가에 있는 증류소다. 그래서인지 바닷바람과 가벼운 소금기가 위스키에 스민 듯한 맛이 난다. 계급별로 마시는 위스키도 체급이 다르다. 그것이 오징어게임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