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짠순(가명·35)씨는 퇴근 길에 들른 마트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특가’란 이름을 달고도 1만3990원이나 하는 딸기와 6980원인 양파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쇼핑을 포기한 것이다.
짠순씨는 야채 김밥 4500원, 국밥 한 그릇에 1만원 하는 회사 근처 물가가 감당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 다니는 직장인. 원룸 방으로 돌아온 그가 “직접 식재료를 키워 먹겠다”며 꺼내든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그 안에 농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접속한 것은 이커머스 업체와 식품 업체, 배달 업체의 애플리케이션(앱)에 든 보상형 게임. 스마트폰 속 나만의 농장에서 감자 농사와 벼농사를 짓고, 병아리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돌본다.
1원, 10원 단위 포인트까지 아껴 모으는 짠테크가 ‘게임’으로 진화했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나 현물을 제공하는 보상형 게임에 기꺼이 시간을 쓰는 ‘티끌 모아 태산’ 신봉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치솟은 물가는 농산물 가격이 작년 한 해에만 10.4% 오르며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통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매일 체감된다. 밖에서 밥 사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 시대. 티끌 수집가들은 보상형 게임에 바친 시간을 포인트로 환급받아 살림에 보탠다.
콩나물 가격 100원 차이에도 예민하다는 주부들이겠거니 하면 오산. 2030 직장인부터 연봉 1억원 훌쩍 넘는 부장님까지 티끌 모으기에 혈안이다. 결혼을 앞두고 몸과 지갑 모두 허리를 졸라매는 ‘예신(예비 신부)’ 카페에서는 “저는 짠테크로 에첼, 손목닥터, 컬리팜, 닥터나우 등 6개 앱을 쓰는데 앱 하나당 3개월 정도면 4만5000원 모으고, 하루 8000보 이상 걸으면 8개월 만에 10만원 모으는 것 같아요” 같은 경험담이 공유된다. 단순 계산으로 앱 하나당 월 1만5000원, 총 6개를 구동하면 한 달에 9만원! “티끌은 모아 봐야 티끌”이라는 조롱은 거두시길.
동네 엄마 모임인 맘카페에서는 ‘친구 찾기’ 재테크가 성행한다. “맞팜 친구 구해요~”는 이커머스 업체 올웨이즈가 운영하는 보상형 게임 올팜에서 친구 맺을 사람을 찾는다는 뜻. 게임 속 농장에서 키운 대파, 양파, 포도 등을 실제로 배송해주는 이 게임에선 친구의 농장을 방문해 물을 주면 내 농장에서 쓸 수 있는 비료를 준다. 게임 속 친구를 맺는 것 자체가 재테크인 셈.
하루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는 ‘캐시워크’는 중장년층도 즐기는 만보기 게임이다. “캐시도 적립하고, 건강도 적립해요”라는 이 회사의 광고 문구가 “TV를 볼 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흔든다”는 수동(手動) 재테크나 스마트폰을 자동으로 흔들어주는 기계를 구입해 포인트를 쌓는 자동(自動) 재테크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티끌 수집가들이 늘어나자 기업들은 너도나도 보상형 게임을 내놓는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9월 자사 앱인 CJ더마켓에서 쌀알을 키워 밥을 완성하면 집으로 햇반을 보내주는 게임 ‘쌀알이네 부뚜막’을 내놓았다. 게임에서 키운 쌀알이로 진짜 햇반을 받아 먹은 사람이 벌써 1800명이나 된다. 배달 업체 요기요는 병아리를 키우면 최대 5000원 쿠폰을 제공하는 요게임을 지난달 시범 서비스하고, 장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잘 키운 병아리가 무료 치킨 배달비로 돌아오는 셈. 새벽 배송 업체 컬리의 컬리팜에서는 150만명이 농사를 짓고 있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오늘의집에선 오늘의가든이라는 정원 가꾸기가 유행이다. 대부분 매일 접속해 물이나 음식을 주면서 동물이나 작물 캐릭터를 키우는 육성형 게임. 게임을 하기 위해 자사 앱에 접속한 고객을 붙잡아 광고 시청, 상품 구입 같은 미션을 수행하게 하는 전략이다.
마트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짠순씨가 보상형 게임에서 얻은 포인트로 산 물건 목록을 받아보았다. 맘스터치 불고기버거 세트, 오뚜기 스파게티 용기면 등은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식사가 됐고, 겨울 바람 막아줄 1만3000원짜리 목도리 모자는 포인트 덕에 반값이 됐다. 짠순씨가 모은 티끌이 배 속을 든든하게, 시린 귓바퀴를 훈훈하게 데운 것처럼 새해 짠순씨의 살림도 나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