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추어탕이 내게로 들어왔다.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는 내가 안 먹는 음식이 추어탕이어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추어탕이라고 생각하는 남도식 추어탕(남원 추어탕이라고도 함)이 꺼려져서 피했는데 지역별로 추어탕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 강원도식 추어탕과 경상도식 추어탕을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맑고 산뜻한 결의 음식이어서. 그래서 강원도와 경상도에 연고가 있는 분을 만나면 그 지역 추어탕에 대해 묻곤 하는데, 방아잎이 들어가는 추어탕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방아잎이라니!
방아잎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방아잎이 들어간다는 추어탕이 몹시 궁금해진 것과 더불어 내가 마셨던 방아 하이볼을 떠올렸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을 많이 아시는 분이 어느 날 내게 방아 하이볼 집을 소개해주셨던 것이다. “요즘 하이볼 많이 먹어요?”라고 하셔서 “글쎄요”라고 했더니 ‘요건 몰랐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방아 하이볼 먹어 봤어요?”라고 하셨다. 이런 화법에 몹시 취약한 편. 말했다시피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저런 화법으로 말하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궁금함을 해결할 때까지 안절부절못한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까지는 아니어도 ‘언제 가지?’ ‘누구랑 가지?’ ‘아, 빨리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리 한쪽에서 떠나지 않는다.
S와 J와 나는 술집이 여는 시간인 5시에 도착했다. 참고로 S와 J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인 데다 마침 그날 다들 시간이 났다. 무엇보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 직업을 가졌으므로 평일 5시에 당당히(?) 술집의 첫 손님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첫 손님이 되는 데 집착하는 편인데, 그래야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다. 술집에서는 더 중요하다. 홀이 아닌 바에 앉아야 하는 것은 물론, 술병과 각종 기물과 바텐더의 손동작이 가장 잘 보이는 최적의 위치에 착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모어와 야마자키와 히비키가 놓인 앞에 앉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선반에 아란과 부커스, 러셀이 종류별로 있었다. 이런 걸 다 마셔본 건 아니지만 맛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풍만한 느낌이 든다. 피트, 스카치, 버번, 라이, 코냑 등등으로 온갖 하이볼을 다 만들어주는 하이볼에 특화된 술집이지만 방아 하이볼은 꼭 마셔볼 것이며, 방아 페스토로 만든 파스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첫 잔은 방아 하이볼이었다.
바텐더와 나와의 거리는 불과 50cm. 진지하게 관전을 시작했다. 일단 절구보다는 막자사발에 가까운 사기그릇에 엄청난 양의 방아잎을 으깨는 것으로 시작, 위스키를 거기에 부었나? 평소의 나라면 정신을 차리고 바텐더의 손놀림에 집중했겠으나 그날의 나는 S와 J와 이야기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 게다가 멀티는 되지 않고, 내가 찍은 영상은 바텐더가 전완근의 힘으로 방아잎을 으깨는 데서 끝난다. 그래도 으깬 방아에 위스키를 부은 후 체로 걸렀다는 것은 확실하게 보았다.
방아잎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부산에서 즐기지 않는 음식인 장어를 먹으러 갔다가 방아를 처음 만났다. 방아를 먹자마자 거의 홀렸고, 방아와 먹으니 장어를 계속해서 먹을 수 있었다. 온갖 허브와 향신료를 좋아하는 내게 ‘조선 민트’라고도 하는 방아잎은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알고 보니 방아잎은 경남 문화권에서는 일상적으로 먹는 재료지만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한 재료였다.
이 방아 하이볼이 내가 먹은 두 번째 방아였다. 어머, 이게 말이 돼? 이 맛있는 걸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게 분했다. 온갖 회를 방아 페스토에 찍어 먹고 방아 양념을 듬뿍 올려주신 방아 파스타까지 먹어서 그날의 체내 방아 함유량은 과다였지만 말이다. 만족이 큰 만큼 동시에 억울하기도 한 이상한 기분, 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