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나는 제법 긴 출장길에 올랐다. 부산과 경남 일대 도시를 순회하는 일정. 아침밥은 걸렀고 점심밥은 비교적 간소하게 먹었지만 저녁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나름 고생을 하는데’라는 생각을 보상받듯 최대한 진미(珍味)를 찾아다닌 것이다. 부산에서는 복어 요리를 먹었고 창원에서는 중국 음식을, 진주에 가서는 육회와 육전을 먹었다. 문제는 호기롭게 주문한 음식들이 매번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이었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꾸역꾸역 내가 그 음식들을 남김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일정은 경남 고성과 사천 그리고 남해였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을 조용한 숙박 장소를 찾던 나는 한 가지 꾀를 떠올렸다. 그것은 사찰에 머무는 것. 다행히 동선과 멀지 않은 곳에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는 작은 산사가 있었다. 스님들의 일과를 따르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있었고 마냥 자유로운 일정의 휴식형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글을 써야 하는 나는 후자를 택했다.

산사에 들기 하루 전,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화식(火食)과 육식(肉食)으로 얼룩진 내 입을 조금이나마 씻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번화한 밤거리에서 간소한 음식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자연스레 집도 절도 없이 탁발 수행을 해온 초기 불교의 승려들을 떠올렸다. 불교의 수행 방법 중 하나인 탁발은 타인에게 음식을 빌어 먹는 일이다. 탁발승은 다양한 이들이 주는 숱한 음식을 먹었고 음식을 크게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물론 현재의 불가에서는 육식을 지양하고 자극적인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양념으로는 주로 들깨 등의 곡물 가루, 다시마나 산야초 등의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다. 이날 결국 나는 차 한 잔으로 저녁밥을 대신하고 이튿날 산사로 향했다.

일러스트=유현호

절밥을 아직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TV에서 자주 소개되는 ‘발우 공양’만을 사찰 음식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다. 발우 공양은 빈 그릇 4개를 받아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밥그릇, 찬그릇, 국그릇에 내 양껏 음식을 담고 나머지 그릇 하나에는 물을 담는다. 다만 욕심을 부려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 식사를 마칠 무렵 물그릇에 있던 청수로 먹은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발우 공양은 불가의 정신이 깃든 수행 중 하나지만 매 끼니 이뤄지는 법은 드물다.

산사에 도착해 처음 맞이한 점심 공양 시간. 내 앞에는 오이나 매실, 제피의 순을 이용한 온갖 장아찌가 마련돼 있었다. 비교적 짠 음식의 면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절밥 짓는 일을 돕던 분이 다가와 더운 여름날 작은 산사에서는 주로 이렇게 먹는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자연스럽고도 이치에 맞는 음식들. 벌써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이때의 기억 덕분에 더위에 지친 요즘 같은 날이면 내 밥상에도 소담하게 장아찌가 오른다. 입맛도 함께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