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다랭 쿠라사오’는 만다린 퀴라소를 프랑스식으로 읽은 것으로, 오렌지 맛이 나는 푸른 빛깔 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1930년대 프랑스 파리, 블랑슈 광장의 한 카페에서 사람들이 파란색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다. 파란색 술의 이름은 망다랭 쿠라사오. 떠드는 사람들은 앙드레 브르통과 브르통의 아이들.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자 그룹이다. 책을 보다가 “브르통이 먼저 말하고 다른 이들이 이어갔다. 모두들 화이트와인 혹은 망다랭 쿠라사오에 취해 마치 어린 학생들처럼 마음대로 얘기했다”라는 문장을 보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던 것이다.

망다랭 쿠라사오? 처음 들어보는 이 술은 뭘까 싶으면서도 어딘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는데 각주를 읽으니 알겠다. ‘밀감으로 만든 식전주 망다랭에 카리브해의 퀴라소(쿠라사오)섬에서 자라는 밀감으로 만든 리큐어를 첨가해 만든 음료.’ 만다린 퀴라소를 프랑스식으로 ‘망다랭 쿠라사오’로 읽은 것이었다. 마셔본 적은 없다. 하지만 힌트를 들으니 어떤 맛일지 느낌이 왔다.

망다랭은 만다린, 쿠라사오는 퀴라소였다. 순간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만다린은 밀감의 한 종류고, 퀴라소는 블루 퀴라소의 그 퀴라소 아닌가. 블루 퀴라소라고 부르는 리큐르답게 블루 퀴라소를 넣은 칵테일은 푸른빛이었다. 푸른빛이지만 오렌지 맛이 나는 게 특이하다고만 생각했지, 퀴라소는 퀴라소라고만 생각했지, 카리브해에 쿠라사오라는 섬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쿠라사오가 퀴라소가 된 것이라든가 블루 퀴라소를 ‘블루’로 만든 건 카리브해 바다에 대한 모방임도 알겠다. ‘망다랭 쿠라사오’가 나오는 문장과 각주를 읽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딸려 올라온 것이다. ‘에르메스 수첩의 비밀’이라는 책이다.

책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나는 망다랭 쿠라사오가 푸른빛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짐작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푸른빛인 블루 퀴라소와 달리 망다랭 쿠라사오는 오렌지빛이거나 오렌지 계열 리큐르인 쿠앵트로처럼 무색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망다랭 쿠라사오는 푸른빛일 것 같다. 나는 왜 망다랭 쿠라사오가 푸른빛일 거라고 주장하는가? 인상파 화가들이 압생트의 초록색에 홀려서 ‘초록 요정’이라고까지 했던 걸 알기 때문이다. 인상파의 ‘그린’이 초현실주의자에게는 ‘블루’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온갖 엄격한 강령을 공유한 집단답게 푸른색 술을 마시며 모임을 갖는 게 초현실주의자들의 리추얼(ritual·의례적 절차)이 아니었을까라고도.

그들이 모인 블랑슈 광장의 카페는 시라노(Cyrano)였을 것이다. 몽마르트르에 살았던 브르통이 모임 장소로 애용하던 곳이다. 시라노에 대해 찾다가 시라노의 위치를 표시한 파리 지도와 시라노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한때 이 자리에 시라노가 있었다며 초현실주의자들의 모임 장소라고 되어 있다. 나를 의아하게 한 건 ‘그들은 망다랭 쿠라사오를 마셨다’라는 다음 말이었다. 아니, 어떤 날은 다른 음료나 술을 먹을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망다랭 쿠라사오를 마시나? 다른 걸 마시는 건 마치 대오에서 이탈하는 일이라는 식이 아닌가? 정말 그들의 강령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함께 제시된 시라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랭루주(Moulin Rouge) 바로 옆이었기 때문이다. 몽마르트르의 상징이 ‘붉은 풍차’라는 뜻의 물랭루주라는 클럽인데 시라노는 한 건물에 있던 것이다. 여기가 정기 모임 장소였다고 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랭루주에 간 적이 있어서다. 몽마르트르에 갔다가 어쩌다 지나친 게 아니라 물랭루주에 가기 위해 그곳에 갔었다.

베를린에 몇 달 머물고 있던 내가 삼박사일 일정으로 파리에 갔을 때였다. 나는 시각예술가 K가 머물고 있는 레지던스에서 지냈는데 파리에서 열리고 있던 그룹전에 참여한 K의 전시를 보는 것 말고는 우리는 따로 움직였다. 같이 무언가를 한 건 물랭루주에 간 것뿐이다. 우리는 카바레 쇼를 관람했다. 꽤나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볼 때보다 비쌌다. 하지만 무척 만족스러웠다. 카바레 쇼를 처음 봐서 그런지 몰라도 신선했고, 즐거웠고, 기억에 남았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흥이 그다지 없는 나도 그날 본 춤을 추고 싶었고, 그래서 췄다.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수줍게 방에서 혼자 출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꽤나 흘러 한 동작도 생각나지 않는다. 슬프다.

카바레 쇼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무희들이 떼로 나와 사람들의 정신을 빼놓는 쇼라고 해야겠다. 그걸 보면서 술이나 음식을 먹는 게 카바레 쇼라는 장르인 듯하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 종목에서 입을 법한 옷을 입거나 반나체로 춤을 추는데, 거기에 외설이나 퇴폐의 기운은 없었다. 명랑하고 또 명랑하다. K와 나는 왜 저런 미인들이 반나체로 춤을 추는데 유혹적이거나 야하지 않은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그녀들이 인간적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등신 가까이 되는 비율의 몸은 CG로 보정을 한 것처럼 군살이 없어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벽한 그녀들이 입을 찢을 듯 활짝 웃으며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거나 점프하는 장면이 빠르게 이어지는 걸 보면서 감탄하다보니 쇼가 끝나 있었다.

브르통과 사랑했고, 아이도 낳은 자클린 랑바라는 화가가 있다. “그녀는 활달하고, 기운차고, 성깔 있고, 불같다고 묘사되었다. 또 지적이면서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살 수 없었기에, 그녀는 물랭루주 카바레에서 누드 댄서로 일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물랭루주에 갔던 그 밤을 떠올렸다. 카바레 쇼를 보았고, 신이 났고, 얼마나 즐거웠으면 춤을 따라 추고 싶었던 그 밤을.

모두 ‘망다랭 쿠라사오’라는 이미지에 심취해서 시작된 일이다. 다시 물랭루주에 간다면 망다랭 쿠라사오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카페 시라노의 역사를 공유하는 곳이니 망다랭 쿠라사오가 있을 거라고 또 마음대로 속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