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비비테

“나, 난자 냉동해볼까?”

사랑스러운 조카를 바라보다가, 내가 말했다.

“이미 늦은 건 아니야? 그나저나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어?”

30대 중반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딸에게 엄마는 현실적으로 말했다. 아직 결혼을 할지, 아이를 가질지도 모르겠는 나는 “낳을 수도 있으니까”라고만 답했다. 주위에는 비슷한 상태의 남녀 친구가 많다.

누군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다들 ‘맞다’, ‘맞지 않다’라는 가치 판단을 달리하는 기준에 대해 최재천 교수가 한마디로 정리한 걸 보고, 좋아요를 마구 눌렀다.

그 기준은 바로 ‘생존에 유리한가?’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본인의 유전자를 지구에 남기는 것이 본능일 텐데, 그럼에도 그 결정을 지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은 생존에 불리하다는 생각 때문인 거다. 나아가, 앞으로 세대가 살아가기에도 생존에 불리할 거라는 본능적 직감 때문이다.

난자 냉동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친구가 링크를 보내줬다. 난자 하나당 20만원이면 냉동할 수 있다는 시술 정보였다. 보통 10개는 냉동해야 하니까 200만원이 드는 셈이다. 그리고 1년마다 금액이 발생한다. 난자는 5년 동안 보관하면 폐기해야 한다.

“그래서, 난자로 임신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정확히 모르겠어.”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봐도, 난자를 얼려서 5년 뒤에 그 난자로 임신했다는 에피소드는 찾기 힘들었다. 하물며 주택 청약도 어느 정도의 확률과 유불리를 계산할 수 있는데, 이렇게 단서를 찾기 어려운 주제는 오랜만이다. 분명한 건, 한 달에 20만원 정도 내야 난자를 냉동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세포들이 지낼 작은 방의 월세라고 생각하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검색하다 보니, 한 예능에서 연예인 솔비가 난자 냉동을 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호르몬 주사 때문에 살이 쪘다고 민망해 하는 그녀. 그 외에도 감정 기복과 여러 통증까지 ‘보험’을 들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이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정자’를 얼려두었다는 남자 연예인의 뉴스도 검색되었는데, ‘생존에 유리한’ 재정적, 사회적, 심리적 상태가 되기를 꿈꾸며 보험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선거를 앞두고 ‘저출생’ 대책을 이야기하는 뉴스를 본다.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거나, 기저귀 값을 지원한다는 정치인과 지자체들. 대부분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분적’ 시기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궁극적으로 고민하는데, 세상은 ‘부분적’으로 응답한다. ‘지원금 가설’이 맞다면, 그 뉴스를 보고 당사자인 내 마음에 ‘생존에 유리하겠군’ 하는 초록불이 켜져야 할 텐데 내 마음에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