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12·12 사태를 다룬 이 영화는 권력에 눈이 먼 쿠데타 세력과 이를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참군인’ 간의 대결 구도지만, 실제 역사는 그보다 더 복잡다단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이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직접 보니 듣던 대로 긴박감 넘치는 연출에 연기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실제 역사와 동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영화 도입부에서 감독이 밝히듯이 사실을 재료 삼아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니 너그러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도가 지나쳤다. 장태완 수경(首警)사령관을 빗댄 영화 속 이태신 장군(정우성)이 행주대교에서 전차 부대를 맨몸으로 저지하거나 탱크 4대를 이끌고 광화문에서 전두환 세력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너털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의 의도가 짐작은 된다. 전두환을 권력욕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짓밟는 악마로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최규하, 정승화, 장태완 등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묘사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야 선악 구도가 살고 액션 장르 영화로서의 흥미 유발이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단순 선악 구도 이상으로 복잡했다.

최규하의 경우, 당시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1979년 11월 10일 최규하는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담화를 발표한다. 요지는 현행 유신헌법대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즉각 개헌을 요구하던 민주화 진영은 강력 반발했다. 그럼에도 12월 6일 최규하는 간접선거에 단독 출마하여 96%라는 압도적 지지로 유신체제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따라서 12·12 당시 최규하는 단순한 권한대행이 아니라 유신체제의 정식 대통령이었다. 과연 최규하는 ‘악의 무리’ 전두환을 저지하고 민주화를 지향하던 ‘선한 무리’였을까?

정승화는 어떤가? 1979년 그는 유신체제의 육군참모총장이었다. 당시 육참총장은 군령권을 쥐고 있는 실질적 군 총책임자요, 유신체제의 핵심 멤버였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없다. 더욱이 정승화는 11월 26일과 27일 계엄사령관 자격으로 언론인 간담회를 열어 강성 발언을 내놨다. “그 사람은 용공이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쿠데타라도 일으켜 막겠다.” 여기서 ‘그 사람’은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얼마나 억울했던지 1987년 대선 직전 정승화가 김영삼과 손을 잡자 기자회견을 열어 정승화를 비판했다. 정승화는 “군의 비토권(거부권)”을 주장했던 사람이고, 자신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워 박해”했으며, (1979년 당시 군인들 중) “처음으로 정치 개입을 공언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군에는 정치에 대한 ‘비토권’이 있고, 특정 정치인을 ‘비토(거부)’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과연 군의 정치 중립을 주장하는 ‘참군인’일까?

장태완 역시 유신체제 육군의 고위 장성이었다. 특히 그의 대북관은 남달랐던 것 같다.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후,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했고, 2002년 북한 해군이 NLL을 침범하자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켰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발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영화에서는 장태완이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안티테제로 나오지만, 그는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3년간 공기업 사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정치 중립에 목숨을 거는 영화 속 이미지와는 다소 부조화하는 것 아닐까?

‘서울의 봄’이 히트를 치니 구(舊)운동권 정치인들이 우쭐하는 모습도 어이가 없다. 아니,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던 과거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말이 없는데, 왜 자기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오롯이 접수하려 드나?

게다가 과거 학생운동은 ‘민주화’뿐이었나? ‘반미’를 외치면서 미 문화원에 불 지르고 폭탄 던지고 했던 것은 누구였나? 그런 과격한 행동으로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실상의 세습군주제에 기본적 인권마저 무시하는 북한의 실상을 외면하고 오히려 찬양, 두둔했던 것은 누구인가? 무고한 사람을 ‘프락치’로 몰아 두들겨 패서 죽음에 이르거나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긴 경우도 있었다. 민주화의 공(功)을 주장하고 싶으면 과거 학생운동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응당 반성이 있어야 할 일이나 구운동권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이러니 일각에서 ‘운동권 청산’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젠 ‘청산’도 좀 피곤하다. 일제 청산, 독재 청산, 이젠 운동권 청산까지. 한국정치는 청산만 하다 날이 샌다. 사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봄’ 보고 쿠데타 무서워 밤잠을 못 이루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가능하지도 않은 군사 쿠데타가 무서워, 있지도 않은 독재 청산에 나서자는 것인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기실 ‘서울의 봄’이 아니다. ‘서울의 봄’은 이미 지났고, 계절은 ‘가을’에 이르러, 곧 ‘겨울’이다. 대한민국의 수평선에 떠오른 저출산 고령화의 쓰나미는 조만간 저성장과 부양비용 급증이라는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청산’으로 절대 해결 못 한다. 오로지 생산적 비전과 그 실행만이 방파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좌든 우든, 제발 ‘청산’ 좀 그만하고 ‘생산’에 집중하자. ‘서울의 봄’이야 영화관에서 팝콘 먹어가며 즐기면 그만이지만, 불이 켜지고 영화관 문 열고 나오면 밖은 벌써 서늘하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었고, 이제 ‘겨울’이 닥쳐 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