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산 사람은 김민’정’ 발음을 잘 못해요. 김민’졍’. 이래 얘기합니더.”
인기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윈터가 완벽한 부산 사투리로 자신의 본명 ‘김민정’을 발음하는 1분짜리 쇼츠 영상이 1개월 만에 조회 수 1115만회를 기록했다. 부산 출신인 윈터가 유튜브 채널 ‘꼰대희’(구독자 136만명)에 출연해 어설픈 부산 사투리로 자신의 본명을 ‘김민저이’로 부르는 개그맨 김대희를 부산 토박이만 구사할 수 있는 ‘찐’ 부산 사투리로 ‘참교육’한 게 대박을 친 것이다.
과거에 걸그룹의 사투리는 신비한 이미지가 훼손된다며 금기시했지만 최근에는 정반대다. ‘김민졍, 이래 얘기합니더’라는 윈터의 말에 팬들은 “이래는 할머니들이 쓰는 건데 윈터가 하니까 매력 터진다” “사투리 들으니 더 친근하다”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팬들도 “사투리 쓰니까 더 예뻐 보인다” “사투리 하는 게 너무 귀엽다” “지방에 사는 막내 고모 생각난다”며 환호했다.
사투리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X세대 문화를 재현하는 레트로 열풍을 따라 ‘서울 사투리’가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지역별 사투리를 심층 탐구(?)하는 콘텐츠들이 사랑받고 있다. 웃자고 지어낸 엉터리 사투리까지 인기를 끌 정도다.
그 중심엔 마구잡이로 지어낸 가짜 부산 사투리, 이른바 ‘짭투리’를 구사하며 자신이 부산 출신이라고 우기는 ‘경상도 호소인’ 개그맨 이용주가 있다. 유튜브 코미디 채널 ‘피식 대학’(구독자 279만명)에서 활약 중인 이용주는 실제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산을 떠나 경기도와 호주 등에서 성장한 탓에 부산 사투리를 쓰지 못한다. 울산 출신 동료 개그맨 김민수에게 늘 놀림을 받았다.
그러다 피식대학 토크쇼 ‘피식쇼’에서 부산 출신으로 구수한 사투리를 탑재한 배우 강동원과 함께 출연한 날 사건(?)이 터졌다. 이날도 부산 출신임을 호소하던 이용주에게 강동원이 ‘바퀴벌레를 부산에서 뭐라고 부르냐’고 물었는데, ‘강구’를 몰라 당황한 이용주가 ‘바쿠쌉꿀빠’라는 괴상한 단어를 내뱉은 것.
난데없는 가짜 사투리에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웃음이 터지면서 촬영장은 초토화됐고, 시청자 역시 폭발적 반응을 보이면서 ‘바쿠쌉꿀빠’는 삽시간에 ‘밈(meme)’이 됐다. 더 대담해진 이용주는 경상도 지역을 이곳저곳 여행하며 싹퉁마(버릇 없는 녀석), 깔끼하네(멋있네, 맛있네) 등 엉터리 부산 사투리를 마구 던지는 ‘경상도 호소인’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매회 조회 수 50만~100만 회를 올릴 정도다.
과거에는 사투리를 ‘경상, 전라, 강원, 충청’으로 나눴지만, 사투리에 열광하는 MZ세대는 더 디테일하게 파고든다. 경상도 사투리를 부산, 대구, 마산·창원 등 지역별로 세세하게 비교한 유튜브 영상들은 조회 수가 가뿐히 수십만을 넘긴다. 가령 ‘너 왜 그래’를 부산은 ‘와그라노’, 대구는 ‘와카는데’, ‘어쩌지’를 부산에선 ‘우짜지’, 대구에선 ‘우야지’로 말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는 반응이다.
1980년대 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한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가 인기를 누리면서 충청도 사투리와 충청도식 화법도 MZ들 사이에서 화제다. 극 중 임시완이 던진 “구황작물이여? 뭘 이렇게 캐물어싸?” “다들 탄 고기를 좋아혀?(고기 타기 전에 어서들 먹자)” 같은 대사들이 젊은 세대에는 생소하면서도 구수한 재미를 준단다. 덕분에 “사장님, 요새 단무지 값 많이 비싸유?(왜 단무지를 안 가져다 주나요?)” “너 혓바닥에 땀나것다(너 참 말이 많다)” 등 충청도 화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콘텐츠들도 조회 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MZ들은 왜 사투리에 열광할까. 역설적으로 서울과 지방 간의 심리적·문화적 거리가 멀어진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지방과 떨어진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 세대일수록 사투리는 ‘신선한 타자(他者)’로 발견된다”며 “지금 수도권에서는 사투리가 거의 소멸한 상태다 보니 더 생소하고 그만큼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지방 문화에 대한 관용도가 높아진 것이라는 긍정적 분석도 있다. 김덕호 전 한국방언학회 회장(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과거에는 표준어 진흥을 위해 학교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게 하는 교육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사투리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친숙함과 관용도도 높아졌다”며 “기성세대도 사투리를 다룬 영화, 드라마를 통해 사투리에 대한 친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방탄소년단(BTS)이 10년 전 전국의 사투리를 가사에 담은 ‘팔도강산’을 발매할 정도로 지금 청년은 사투리에 열려 있는 세대다. 노정태 위원은 “과거에는 생소한 사투리가 상스럽거나 촌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일부 있었지만, 젊은 세대가 사투리에 대해 더 관용적이다 보니 엉터리 사투리 개그도 반감보다 호감을 느끼고 재미있게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