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회 방송회관에 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 만연한 비속어⸱신조어⸱외래어 등을 심의한다. 직접적인 징계 의결권은 없지만 사안이 중대하면 제재 권고를 하기도 한다. 작년 연말엔 독특하게 스포츠 중계를 다뤄보았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 한일전이라 온 국민의 관심이 높았던 경기였는데 너무 많은 영어와 전문용어 남발 등이 못내 거슬렸다.
우선 전문용어를 짚어보자. 빌드업(build up). 증강⸱축적⸱강화와 예비⸱준비라는 의미가 있는데, 벤투 전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즐겨 쓴 전술로 알려져 있다. 공을 상대 문전까지 보내기 위한 선수들의 움직임과 패스의 종합이라는 뜻. 그러나 ‘빌드업 상황’ ‘빌드업을 통해 만들다’ ‘빌드업 시도’ ‘빌드업 저지’ ‘빌드업을 맞추다’ 등 빌드업 범벅인 중계는 불편했다. 컷백(cut back)도 그렇다. 원래 미식축구에서 유래한 용어로 공을 가진 선수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패스하는 컷백을 이해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스텝 슈팅, 제로 톱, 쿨링 브레이크, 스위칭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영어도 왜 그렇게 많은지…. ‘크리티컬한 상황’ ‘퍼펙트한 경기’ ‘피지컬이 좋은’ ‘무브먼트를 통해서’ ‘에브리싱 오어 나싱이에요’ 같은 대목에선 허탈했다.
‘지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슈팅 햄스터’는 또 뭔가? 지박령(地縛靈)은 땅에 얽매여 있는 영혼이고 햄스터는 몬스터의 반대 의미란다. 풀이하면 어떤 선수가 군 면제가 걸린 국제 대회 때마다 우승을 못해 빛을 못 보고, 따라서 그의 슛과 킥이 취약해졌다는 것. 여러모로 자중해야 할 언사였다.
스포츠 중계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다. 특히 국가 대항전에선 수면 아래 있던 애국심을 부르는 매력적 기제가 작동한다. 그런데 모름지기 중계란 무엇인가. “현장 상황을 방송사가 국민을 위해 중간에서 매개한다”는 의미가 맞는다면 아나운서⸱해설가⸱제작진은 방송인으로서 초발심(初發心)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방송의 목적과 시청자의 공익 말이다.
우선 아나운서는 관전자가 아니다. 절대다수 관전자인 시청자의 특급 도우미 역할이 책무다. 정보와 재미, 열정으로 무장한 채 경기를 적실하게 묘사하고 이 장면, 저 상황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어야 한다. 해설자와도 관계 설정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방송 전문가가 아닌 해설자가 정제되지 않은 언급이나 지나친 전문용어를 쓸 때 요령 있게 개입해 가다듬고 정리하는 일이다. 전문가란 전문용어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풀어주는 인물이어야 옳다. 아나운서는 해설자와 어울리되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중계가 세대와 계층을 잘 아우르고 있는지, 혹여 인기와 명예욕에 사로잡혀 자만에 빠진 언어를 구사하지는 않는지 톺아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아나운서계의 항성(恒星)들은 스포츠 용어의 우리말화에 늘 열성이었다. 야구의 윤길구는 ‘그라운드 볼’을 ‘땅볼’로, 배구 임문택⸱최평웅은 ‘강스파이크’를 ‘강타’로 한국화했다. 농구 이명용⸱이정부는 ‘슛 골인’의 습속(習俗)을 ‘성공⸱득점⸱들어갑니다(들어갔습니다)’로 다변화하고, ‘백 보드’는 ‘뒤판’으로 바꿨다. 축구 우제근은 ‘좌측 라인, 우측 라인’을 ‘이쪽 선상, 저쪽 선상’으로 쉽게 시각화했다. 가슴에 밴 모국어 사랑, 기계적 대체어 찾기가 아닌 맥락에 따른 상황어 발굴, 그리고 ‘문장은 사실의 그림’이라는 명제를 체화한 선구자들이었다.
절로 이뤄진 게 아니다. 이들은 수없이 중계 데모(연습용) 테이프를 내밀고는 혹독하게 꾸짖는 선배들에게 시달렸으며, 적어도 3~5년 동안 라디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겨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내면의 혼돈을 겪어야 한다.”(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미어리그, 리그1, 세리에A 경기를 직간접으로 체험하고 선진 축구 영상에 몰입하며 전문 웹사이트를 파고드는 것, 물론 필요하고 실효적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방송에 임하는 정신과 자세, 그리고 태도다. 이 중계를 누가 보는가, 내 소임은 무엇인가, 시청자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물음을 내내 기억하는 일이다.
스포츠 중계방송은 국민 누구나, 남녀노소에게 다 열려 있어야 할진대 지금 모습은 안타깝게도 젊은 층과 축구 마니아 위주로 변질해 가는 느낌이다. 카타르 아시안컵이 개막했다. 손흥민⸱이강인⸱황희찬 등이 버티고 있는 축구 대표팀이 64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쥘 절호의 기회라고 이구동성이다. 태극 전사들이 금빛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상상을 하며 중계방송도 걸맞은 일류 품질을 기대한다. 어린이를 배려하고 ‘선배 시민’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임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드러내면 냄새요 드러나면 향기다. 15일 바레인전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