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의 바다. /크레센트 엔터테인먼트

“와이라 세라 와이라 세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됩니다.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옛 삼표성수공장부지에 설치된 FB씨어터. 올해로 10년째, ‘미친 공연’이라는 별명을 얻은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 공연입니다.

스페인 어로 ‘잔혹한 힘’이라는 뜻의 이 공연은 도시의 빌딩 숲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모티브로 탄생한 퍼포먼스입니다. 2005년 세계 초연 이후 전 세계 36개국, 63개의 도시에서 약 6000여회 공연, 총 관람객 65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올해로 10년째인 한국 공연은 누적 관객만 18만명이지만 티켓팅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그룹 ‘몬스터엑스’의 리더이자 메인 댄서인 셔누와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의 우승자 바다가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날고, 셔누는 달리다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에서 달리는 셔누. /크레센트엔터테인먼트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반복되는 시계 초침 같은 음악과 함께 등에 쇠고리를 건 셔누가 등장합니다. 흰색 양복에 갈색 구두를 신은 그의 어깨는 살짝 굽어 있습니다. 소심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똑같은 책상과 서류 더미 속에서 열정을 잃어버린 눈빛, 부딪히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반복된 일상에 지쳐버린 직장에서의 우리 모습 같습니다. 러닝머신 위를 반복해 달리던 그는 어느 순간 종이상자로 쌓인 벽을 뚫고 숨 막힐 듯 달려갑니다. 약 10분간 6km 처절한 질주. 마지막 벽을 부수는 장면에서 오는 찬란한 해방감은 카타르시스에 저절로 함성을 지르게 합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단박에 날려버리는 희열감을 줍니다.

지난 8일부터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의 바다도 합류했습니다. 그는 약 14m의 크레인을 이용해 와이어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달립니다. 자유로이 유영하는 듯한 이 장면의 이름은 ‘라그루아’, 카니발 공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입니다. 그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춤을 추는 ‘무르가’에도 등장합니다. 공연장 중앙에 세워진 타워를 중심으로 북을 치는 배우들이 주위를 에워싸며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다 같이 특수 제작된 종이 상자를 신나게 부술 때면 온몸에 도파민이 분출됩니다.

◇공연 전체 촬영 가능!

푸에르자 부르타 라운지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셔누와 바다 팬뿐 아니라 관객들이 휴대폰으로 담고 있습니다. ‘공연 매너가 별로네’라며 눈을 흘길 이유가 없습니다. 이 공연은 시작 전 다른 곳과는 다른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본 공연은 촬영이 허가돼 있습니다. 자유롭게 촬영하고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휴대폰 배터리와 용량만 버틸 수 있다면 70분 동안 전부 촬영하는 것도, 그 영상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공연 시작 전 “휴대폰 꺼주세요”, “앵콜 촬영 안 됩니다”를 외치는 다른 공연들과 사뭇 다릅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벽·천장 등 모든 공간을 무대로 활용한 ‘인터랙티브(상호 간) 퍼포먼스’입니다. 특별한 무대도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동하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함성을 지르고 방방 뜁니다. 그러다 보니 촬영한다고 해서 방해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들은 숨은 고수들에 의해 잘 편집돼 ‘#인생공연’, ‘#미친공연’이라는 해시태그로 소셜미디어에 오릅니다. 자동 홍보 효과입니다.

이 작품은 파격적인 도전과 시도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연출자 디키 제임스와 음악 감독 게비 커펠이 영화의 특수효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공연입니다. 조명과 소품, 그리고 음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미국 뉴욕에서 이 공연을 처음 본 제작자 한봉수 대표는 “지금까지 이 공연을 한국에 알리지 않은 건 직무 유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느 각도에서 촬영하고 숏폼에 올려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다 보니 관객들은 추운 겨울에도 배우처럼 꾸미고 공연장을 찾습니다. 이들이 두꺼운 패딩과 코트를 벗을 수 있게 사물함도 준비돼 있습니다. 비욘세, 카니예 웨스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돈나, 주드 로, 존 레전드, 어셔, 저스틴 비버, 애쉬튼 커쳐, 장우혁, 최여진 등 수많은 셀레브리티가 환호하며 함께하는 공연입니다.

◇직캠을 나르는 세대

최근 공연장에서는 ‘직캠(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허락하는 곳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과도하게 플래시를 터트리거나 촬영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영상을 조용히 촬영하고 올리는 것은 괜찮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Z세대의 공연 소비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촬영 당한 세대입니다. TV 대신 유튜브를 보고 자라고, 학창 시절에는 수업 시간 아이 패드로 필기를 합니다.

임현식 솔로 콘서트. /큐브 엔터테인먼트

지난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그룹 ‘비투비’의 멤버 임현식의 솔로 콘서트 ‘다이브 인투 유’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촬영이 허가된 공연, 많은 팬들이 그의 열창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자 임현식이 물어봅니다.

“폰 카메라보다 눈으로 담는 게 더 좋지 않아요?”

그의 질문에 팬들이 말합니다. “둘 다 담고 있어요!” 지금 20대들은 이렇게 멀티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은 그날 바로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한 20대 팬이 말합니다.

“임현식 인어공주 분장하고 ‘언더 더 씨’ 노래했다면서요! 트위터에서 봤어요! 인어공주 노래 복습하고 공연 가야겠어요!” 혹시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스포일러 당해도 괜찮아요?” 그러자 그가 말합니다. “전 스포 당하고도 잘 봐요! 오히려 잘 아니깐, 공연 때 호응을 더 잘해줄 수 있어요!”

이들은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트위터로 예습을 하고, 공연을 보고 나면 그 여운을 즐기기 위해 유튜브로 복습합니다. 저 역시 공연 후 임현식의 ‘흰수염고래’ 영상을 유튜브로 복습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예습 복습을 하다 화제가 된 ‘직캠’ 영상은 새로운 팬 유입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브레이브 걸스, EXID가 대표적인 ‘직캠 스타’ 출신입니다. 공연장 촬영 허가는 관객들 모두를 기자로 만드는 영리한 방법인 셈이지요.

여기힙해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