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 번호 232번, 웨이팅 예상 시간 약 63분.”

시작은 서울 성수동 선양소주 팝업 스토어였다. 지난 4일 오후 3시, 월요일 낮이었지만 입장하려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충남 소주 회사 맥키스컴퍼니는 전국구 젊은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성수역 뒷골목을 파랗게 물들였다. 출렁이는 수로 위로 병뚜껑 모양 배를 타고 들어가고, 파란 모래 위에서 거대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하루 평균 700여 명이 모였다. 신분증을 제시하면 소주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고, 6000원이면 어묵 두 개와 붕어빵 네 개를 안주로 먹을 수 있는 곳. 추운 겨울날, 오들오들 떨며 먹는 어묵 국물과 소주 한 잔이 아쉬운 이들을 잡아당겼다.

코카콜라 성수동 팝업 /이혜운 기자

그러나 이대로 밥을 먹으러 갈 순 없다. 걸어서 3분 거리에 가야 할 팝업 스토어가 5곳, 성수동 전체로는 50여 곳이 있다. 지난주에는 무려 71개였다. ‘샤넬 조향 클래스’에서는 75ml에 32만원 하는 고급 향수를 무료로 착향하고, 맞은편 오우드 카페에서는 자라와 스튜디오 니콜슨의 협업 의상을 구경한 다음 커피를 마신다. 코카콜라 팝업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사진 찍고 오너먼트(장식)를 받고, ‘볼보 EX30′ 팝업에서는 키링을 받는다. 사진을 올릴 인스타그램 계정과 걸어 다닐 체력만 있다면 온종일 0원으로도 데이트가 가능한 ‘성수동 팝업 투어’다.

볼보 EX30 성수동 피치스 도원 팝업 /이혜운 기자

브랜드 홍보를 위해 여는 임시 매장 ‘팝업 스토어’. 성수동에서는 연말을 앞두고 매주 60여 개 팝업이 문을 열고 닫는다. 매장마다 캐럴이 흘러나오고, 각양각색 트리가 설치돼 있다. 10년 전만 해도 공장들로 가득했던 이곳은 어떻게 팝업 성지로 변한 것일까?

서울 성동구 성수동 2가에 대규모 팝업스토어를 만든 선양소주(위쪽부터)와 제이에스티나. 배를 타고 입장해 무료로 소주를 시음하거나, 대형 고양이 인형과 사진 찍고 공짜 딸기 라테를 마실 수 있다. /이혜운 기자, 제이에스티나

◇주7일 MZ 상권

“성수동으로 이사하니 어때?” 2020년 여름, 성수동으로 이사하자 사람들이 물었다. “크롭(배꼽티)에 오프숄더, 미니스커트에 핫팬츠 입은 20대들이 가득해!”라고 답했다. 이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성수동은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한 20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 패션지에 실을 수 있을 정도다. 주말 유입 인구만 많은 것이 아니다. 성수동에는 무신사·젠틀몬스터·크래프톤 등 트렌드로 먹고사는 회사들의 본사가 이전했거나 신사옥을 짓고 있다. K팝의 시작 SM엔터테인먼트와 큐브엔터테인먼트,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열풍의 주역인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도 있다. 직장인들이 ‘힙’한 셈이다. ‘주7일 MZ 상권’이다. 조현준 맥키스컴퍼니 미래전략실장은 “음주 문화 변화와 소비 트렌드에 맞춰 젊은 층과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고 했다.

성수동 샤넬 조향클래스 /이혜운 기자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315%

“커이 게이 워먼 자오 장 샹마(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매주 격변하는 성수동이라지만, 작년과 가장 다른 점은 외국어가 많이 들린다는 것이다. BC카드에 따르면, 지난 8월 성수동 외국인 카드 매출은 코로나 이전 대비 1315% 치솟았다. 명동(45%)·강남구(28%)와는 급이 달랐다. 소비 방식도 화장품·전자기기 등 쇼핑 위주에서 문화 중심 서비스 관광으로 변했다. 평소 K드라마를 즐겨 보는 20대 태국인 니다는 한국에 올 때마다 ‘성수동 핫플 투어’를 즐긴다.

이달 초 성수동 무신사 테라스에서 열린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 ‘미뇽 컬렉션’ 팝업 스토어에도 일본인과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방문해 대형 고양이 인형과 사진을 찍었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에 가입한 고객에게는 딸기 라테를 증정했다. 제이에스티나 관계자는 “30대를 겨냥해 잠실 시그니엘에, 20대를 겨냥해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고 했다.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성동구는 지난달 16일 성수역 안에 ‘성수 관광 안내소’를 열었다. 전문 관광 통역 안내사가 상주하며 안내와 편의를 제공한다. 스튜디오 X+U는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 전쟁을 담은 드라마 ‘브랜딩 인 성수동’을 준비 중이다. 배우 김지은과 로몬을 주인공으로 내년 초에 공개된다.

몰티져스 성수동 팝업 /이혜운 기자

◇월세보다 3일 팝업

“성수동에서 보자!” “성수동 어디?” 성수동에서 약속을 잡을 땐 장소를 명확히 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성수동 상권은 가로로는 서울숲·성수대교에서 영동대교 북단까지, 세로로는 중랑천에서 한강까지로 방대하기 때문이다. 과거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처럼 특별한 메인 거리 없이 유명한 장소들이 흩어져 있다. 퍼포먼스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가 열리는 서울숲 FB씨어터부터 ‘윈터트립’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LCDC까지는 걸어서 50분 거리다.

성수동은 1970년대 준공업 지역으로 개발됐던 공장 지대다. 지금 매장이 들어서는 곳은 폐공장들. 팝업 스토어로 쓸 만한 대형 공간이 많다. 큰 건물의 일부를 임대받아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뿐만 아니라, 건물 하나를 통째로 활용한다. 지난 10월에 열린 버버리 팝업 스토어는 건물 3개, 한 블록을 팝업 스토어로 꾸몄다.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도 콘크리트 골조만 남은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한다.

건물주들도 공간을 쪼개 월세를 주는 것보다 기업에 팝업 스토어로 임대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부동산 관계자는 “성수동 건물은 팝업 임대를 3일만 줘도 압구정 한 달 월세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단기 렌트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공실률은 5.8%로 강남(19.2%), 가로수길(36.5%)보다 훨씬 낮다. 성수동 부동산들에는 ‘팝업 상담’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수동은 번화가와 주택가가 혼재돼 있어 밤 장사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저녁이면 문 닫는 팝업 스토어가 동네 분위기와도 잘 맞는다. “300평 단위 대형 매장 일주일 임대료는 1억원이 넘지만, 내년 초까지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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