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철저하게 봉쇄됐던 홍콩, 하지만 미식과 외식은 붕괴하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홍콩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보조를 맞춰 지난 3년 여간 엄격한 방역 정책을 유지해오다 올해 1월 해제했다. 와인&다이닝 페스티벌 기간 돌아본 홍콩의 다인다이닝(고급 외식)은 옛 명성에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가장 호화롭고 세련된 중식을 맛볼 수 있는 도시’라는 타이틀은 유효했다. 홍콩 섬 애드미럴티에 있는 JW메리어트호텔 광둥식 중식당 ‘만호(Man Ho)’는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의 끝판왕이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둥근 월문(月門) 위로 활짝 핀 나팔꽃 모양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에서 미쉐린 1스타를 획득한 제이슨 탕 총주방장이 제비집·전복·해삼 등 아시아는 물론 푸아그라·캐비아·트러플 등 서양의 진미까지 총동원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롭고 창조적인 중식 요리를 선보였다. 홍콩 최고로 꼽히는 차시우(叉燒)는 입에서 살살 녹았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정교하게 축소한 명품 핸드백 모양의 페이스트리가 후식으로 나오자 여성은물론 남성 손님들도 탄성을 터뜨렸다.
여성 셰프 빅키 라우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모라(Mora)’는 소호 지역 어퍼 라스카(Upper Lascar) 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유서 깊은 골동품 상점들 사이에 숨듯 박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뽀얀 아이보리빛 인테리어가 콩과 두부를 주제로 하는 레스토랑이라는 힌트를 준다. 홍콩 외곽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방에서 만든 두부와 콩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음식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풀어낸다. 중식이라는 정체성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서구 조리법을 가미한 음식. 라우 셰프는 미쉐린으로부터 지속 가능성과 환경을 생각한 음식을 내는 식당에 수여하는 ‘그린 스타’를 1개 받았다. 마파두부는 반드시 맛봐야 할 요리로 꼽힌다.
모라에서 멀지 않는 할리우드(Hollywood) 거리에 있는 ‘네이버후드(Neighborhood)’는 꾸미지 않은 듯 소박해 보이면서도 와인, 위스키, 고량주 등 어떤 술이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는 식당이다. 미쉐린 1스타에 이어 지난해 아시아 각국 음식 전문가들이 투표해 뽑는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9위에 올랐다. 소금을 두껍게 발라 구운 닭의 살과 내장, 프랑스 모렐 버섯을 듬뿍 올린 ‘솔트-베이크 라이스 치킨’은 배가 터질 지경인데도 계속해서 손을 끄는 마력을 지녔다.
홍콩이 중식뿐 아니라 세계 어느 지역의 국가 음식도 맛볼 수 있는 도시라는 건 ‘뉴 펀잡 클럽(New Punjab Club)’에서 확인된다. 인도 북서부 펀잡 지역 음식에 특화한 이 레스토랑은 미쉐린으로부터 받은 별을 4년째 유지하고 있다. 생선, 양고기, 닭고기 같은 주 재료가 투머릭·페널·너트메그·클로브 등 온갖 향신료와 허브, 과일과 만나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폭발하듯 풍성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명품 브랜드 구찌의 맥시멀한 디자인을 음식으로 풀어냈달까.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우면서도 화려하다.
웰링턴 거리에 있는 ‘푀유(Feuille)’는 파리에서 2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천재 요리사 다비드 투탱(Toutain)이 올해 홍콩에 오픈한 세컨드 레스토랑이다. “투탱은 프랑스 요리에서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채소를 중앙 무대에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뉴욕타임스 평가처럼, 이 식당에선 접시에 오르는 모든 재료가 입안에서 하찮지 않게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