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원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L팝'에 출연한 한국인 배우 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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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멕시코의 어느 한인 가정. 어린 딸이 하교 후 집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며) 오늘 이렇게 생긴 친구를 봤어!”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당황하며 말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면 안 돼! 너도 그렇게 생겼어!”

◇내가 남미의 디즈니 스타!

이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L팝’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한국인 배우 문지원(28)의 어릴 적 일화입니다.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난 지원은 4개월 때 멕시코 삼성 주재원으로 발령 받은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합니다.

어린 시절 지원은 멕시코인처럼 자랐습니다. 멕시코 친구들과 멕시코 말을 쓰고, 멕시코 음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 멕시코인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들이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다고 해요.

정체성 혼란을 겪은 배우 문지원

“길을 걸으면 사람들은 저에게 치니타(중국 여자), 곤니치와(일본식 인사), 스시, 칭총창(동양인 비하 발언) 등의 말을 건넸어요. ‘칭총창’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했다가, 비하 발언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 아팠었죠.”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중국인이에요? 아니면 일본인?”

이런 정체성 혼란 속에서 그는 한글 학교를 다니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영어를 익히기도 했습니다. 대학은 모국으로 돌아와 연세대학교를 진학했습니다.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등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는 4년 전 유튜브에 ‘지 문(Ji Moon)’이라는 채널을 개설합니다. 한국 친구들에게는 스페인어를 가르쳐주고, 스페인 친구들에게는 한국 문화를 가르쳐 주는 채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메시지로 연락이 옵니다. “디즈니입니다. 기획하는 드라마 배역과 어울리는 것 같아 오디션을 보고 싶은데요.”

코로나 기간, 그는 줌으로 인터뷰를 보고, 오디션에 합격합니다. 제작진은 그에게 “연기 연습도 하지 말고, 살도 빼지 말고,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멕시코로 와 달라”고 했다고 해요. 그렇게 그는 멕시코로 넘어갔고, 이 드라마 ‘L팝’을 촬영했습니다. 이 드라마로 멕시코 연예 기획사와 계약도 체결합니다.

◇멕시코 K팝 팬들을 다룬 드라마 ‘L팝’

/디즈니플러스 L팝

지난 9월 전 세계에 공개된 L팝은 멕시코 내 K팝 팬들이 주인공인 하이틴 드라마입니다. 극 중 인물들은 한국 여행이 상품으로 포함된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경쟁하는데요. 지원은 극 중 주인공인 안드레아의 한국인 친구 혜진 역할을 맡았습니다. 인물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모든 판을 주도하는 역할로 서브 주연급 비중입니다.

*여기서부터는 L팝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안드레아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치대생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치대 공부를 하지만, 진짜 꿈은 한국에서 K 팝 스타로 데뷔하는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치대 공부를 하면서 노래와 춤 연습도 열심히 합니다. 혜진의 가족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도 법니다.

안드레아는 원래 잘 나가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댄스팀 멤버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가 바쁜 일상으로 종종 연습에 늦자, 팀원들은 그를 이 팀에서 방출합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 팀을 모아 대회에 도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혜진의 오빠이자 한식당 셰프인 지원(배우 이산)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인 언니가 카메라에 담습니다.

/디즈니플러스 'L팝'에 출연하는 한국인 배우 문지원(혜진역)과 이산(지원역)

‘한국’이라는 나라도 잘 몰랐던 멕시코에서 제작된 드라마는 시작부터 K 팝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됩니다.

“K팝은 세계적 현상으로써 여러 경계를 부수고 Z세대의 음악 장르가 됐어. 2014년 이후로 K팝이 재생된 시간은 1억 3400만분을 넘지. K팝 스타는 수년간 노래와 춤을 훈련하고 세상으로 나가 스타일의 아이콘이 돼.”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운 유교 나라의 일원으로 살짝 쑥스럽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지원을 한 건 아닌가 싶지만, 감독도, 제작자도, 투자자도 모두 라틴 아메리카입니다.

댄스나 노래 대회를 기반으로 한 하이틴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익숙한 소재입니다. 2006년 영화 ‘스텝업’, 2009년부터 시작된 드라마 ‘글리’ 등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수지, 김수현 등 총출동한 ‘드림하이’가 있었습니다. K팝을 사랑하는 저도 이를 찬양하는 드라마를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페인어로 듣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남미에서 K팝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작품인 듯합니다.

/디즈니플러스 안드레아 데 알바

◇남미 스타가 한국에 오다

드라마의 주인공 안드레아 데 알바(27)는 멕시코의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멕시코 스타입니다. 8살에 라디오 진행자로 데뷔해, 어린이 프로그램, 드라마 ‘통제 불능’ 등을 촬영했습니다. 2018년 디즈니플러스 뮤지컬 드라마 ‘비아’의 주연을 맡으며 국민 여동생이 된 그는 이번 L팝까지 주연을 꿰찹니다. 디즈니 스타 답게 연기와 음악, 춤 모두 뛰어나고, 음반을 낸 경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K팝 열혈 팬입니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에 왔습니다. 드라마 촬영을 하며 친해진 지원과 한국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장소’를 소개하는 이번 주 ‘여기 힙해’의 메인 스토리는 지금부터입니다. 두 사람의 한국 우정 여행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문지원과 안드레아

안드레아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간 장소는 남산과 창덕궁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타워에 올라 열쇠고리도 걸고, 한복을 입고 창덕궁에서 사진도 찍었다고 하는데요. 안드레아는 남자 한복을, 지원은 여자 한복을 입고 촬영했습니다. “왜 남산과 창덕궁이었냐?”고 물으니, “그냥 궁금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처음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에펠탑과 베르사유 궁전부터 찾은 생각이 나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랜드마크와 유적지가 중요한 이유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복을 입고 창덕궁에 놀러간 지원과 안드레아

‘L팝’의 주요 무대는 한식당입니다. 댄스팀원들은 그 곳에서 밥을 먹고, 연습을 하고, 회의도 하는데요. 그들은 라면과 김치를 먹으며 회식을 하고, 지원은 안드레아에게 잡채를 만들어주며 마음을 표현합니다. 한식당 아르바이트생인 안드레아는 멕시코 손님들에게 ‘치즈라면’을 권할 정도로 한식, 특히 분식을 잘 알고 있는데요. 그런 그가 찾은 식당은 바로 서촌에 있는 ‘남도 분식’입니다.

/안드레아가 방문한 남도 분식

즉석 떡볶이로 유명한 이 곳에서 안드레아는 다양한 토핑을 넣어 야무지게 맛보았다고 하는데요. 북미에 이어 남미에서도 ‘라면’, ‘떡볶이’ 등으로 한식 열풍이 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두 친구의 제주도 여행

지원과 안드레아는 2박 3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전역을 렌터카로 타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지원은 “처음으로 멕시칸 친구가 한국 놀러 온 거라 다들 아는 강남, 홍대, 이태원이 아닌 다른 한국의 풍경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방문한 곳은 성산일출봉, 아쿠아플라넷, 무지개 해안도로, 정방 폭포 등입니다. 귤모자도 쓰고, 한라봉 주스도 마시면서 놀았다고 하는데요. 음식으로는 제주도 흑돼지와 해물 라면을 먹었다고 합니다. 안드레아의 라면 사랑은 진심인 듯합니다. 두 사람 덕분에 남미에서 ‘한국 여행’ 열풍이 불기를 기원해봅니다.

/제주도 정방 폭포를 방문한 지원과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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