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한 초등학교가 아파트에 둘러싸인 모습. 이처럼 아파트 단지 내 또는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어 찻길을 건너지 않고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는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초품아: 단지 안에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부동산 업계에선 500m 내 초등학교를 횡단보도 건너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아파트를 뜻하는 신조어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초품아’는 이제 ‘역세권’을 밀어내고 가장 핫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초품아’를 찾는 30~40대 학부모들의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분양 단지 중 1순위 청약통장 경쟁률이 가장 높은 9곳이 반경 500m 이내 초등학교가 있는 ‘초품아’였다.

◇100m 멀어지면 1200만원 떨어진다

‘초품아 프리미엄’까지 생기는 양상이다. 부동산 전문가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작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이뤄진 서울 아파트 거래 2만3000여 건을 ‘초품아’ 기준으로 분석해 보니, 초품아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동일 평수 기준 약 6300만원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초등학교에서 100m씩 멀어질수록 아파트 가격도 1200만원씩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부동산 트렌드 2024′). 건설회사들이 아파트 분양 광고마다 ‘초품아’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매년 초등학생 수는 주는데 초등학교 수는 도리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생은 260만3929명으로, 4년 전(274만7219명)에 비해 14만3290명 줄었다. 그런데 전국 초등학교는 6087곳에서 6175곳으로 88곳 늘었다. 인구가 줄어 지방 곳곳에서 폐교가 늘고 서울 구도심에서도 문을 닫는 학교가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부동산 업계와 교육계에서는 “근래 신도시가 많이 들어서고 인구 유입도 급증한 경기도, 지방 신도시를 중심으로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경기도 내 초등학교는 2018년 1277곳에서 올해 1330곳으로 4년 새 53곳이 증가했다.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지금도 신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와 더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를 신설해달라는 민원이 많다”고 했다.

◇초품아 욕심엔 이유가 있다?

정부는 전국 학교와 교원 수를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일각에선 “학부모들의 과도한 ‘초품아’ 욕심이 불필요한 학교를 늘리는 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하지만 교육계, 부동산 업계에서는 “학교가 늘어나는 걸 부모의 욕심이나 재산 욕심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유가 뭘까.

과거와 달리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졌다. 학교가 늘어나면 어린이 안전과 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8~2022년 만 13세 미만 어린이 교통사고는 4만7515건이 발생해 127명이 죽고 5만9525명이 다쳤다. 찻길을 건너지 않는 안전한 등굣길을 선호하는 부모가 늘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교육계 인사는 “아이를 일일이 돌볼 수 없는 맞벌이 부모 입장에선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는 초품아와 방과 후 안전하게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이른바 ‘학세권’을 선호한다”고 했다.

신도시가 늘어난 경기도는 신설 학교가 부족한 탓에 교육부가 제시한 ‘과밀학급(학급당 28명 이상)’ 기준을 초과하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경기도 내 5만7125학급 중 28.3%인 1만6153학급이 과밀학급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2886학급을 추가로 편성해야 하는 상황. 특히 2016년 하반기부터 올해 4월까지 인구가 31만여 명 늘어난 화성시를 비롯해 하남(14만여 명), 김포(13만여 명), 평택(12만여 명)에선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장거리 통학을 하거나 과밀학급에서 수업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교층)를 비롯한 교육계는 학령 인구 감소에도 과밀 학급을 줄이고 교사들이 보다 밀도 있는 학생 관리와 교육을 하려면 학교와 학급, 교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초품아 열풍이 불기 전 건설업체들이 이른바 ‘단지 쪼깨기’를 한 게 지금의 학교난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경우 사업 주체는 학교 부지 마련 등을 지자체 및 교육청과 협의해야 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협의가 필요 없는 수준으로 대규모 단지를 잘게 쪼개 아파트를 짓고 학교 확보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 한 부동산 업자는 “지금처럼 초품아 선호가 커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최근에는 시공업체나 재개발 조합이 초품아를 마련하려고 부지를 기부채납하거나 사립학교까지 짓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다른 부동산 업자는 “전 정권 시절에 서울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서 경기도로 인구가 많이 유출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4632만원으로 경기도 아파트 평균 매매가(5억1319만원)보다 약 2배 비쌌다.

◇초품아 대신 분품아? ‘공품아’도 등장

‘초품아’ 수요가 늘고 과밀학급이 넘쳐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 당국도 아이디어를 짜내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사업비가 300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교육부 허가(투자 심사) 없이 교육청 허가만으로 학교 신설이 가능해졌다. 아파트 사업 주체나 재개발 조합이 부지를 기부채납할 경우 학교 신설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지난달 서울시 교육청과 경기도 교육청은 ‘캠퍼스형 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령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데 학생 수가 애매하게 적어 학교 신설이 어렵다면, 단지 안팎 상가를 매입하거나 빈 부지에 건물을 지어 ‘도시형 분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주상복합아파트를 넘어 ‘주·상·교 복합 아파트’도 가능해진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토지 가격이 비싸 학교를 신설하려면 사업비가 1000억원을 넘는 게 보통이라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며 “캠퍼스형 학교가 ‘초품아’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되는 학교를 재생하는 등에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발표되자 도시형 분교 설립이 거론되는 지역에선 일부 사람들이 “초품아가 아니라 분품아(분교를 품은 아파트)가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한 부동산 업자는 “초품아를 넘어 최근엔 ‘공품아(공원을 품은 아파트)’도 등장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역세권이 초역세권이 된 것처럼, ‘초초품아’ ‘초공품아’ 같은 괴상한 말이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