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있는 김부경씨(왼쪽). /김부경 제공

인생 최고의 맥주는 마라톤을 뛰다 35㎞ 지점에서 상상한 맥주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썼다.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다. 마라톤에서 35㎞는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난다는, 모든 게 싫증 난다는,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라는 그 지점이다.

하루키는 실제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42.195㎞를 뛰어 결승점에 다다른다. 인간 염전이랄까, 온몸이 소금투성이다. 그가 마침내 차가운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시원하고 맛있다. 그러나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한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은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마라톤 공화국’이다. 29일 춘천마라톤을 비롯해 해마다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만 약 300개에 이른다. 겨울을 제외하면 거의 날마다 어디선가 마라톤을 하는 셈이다. 어떤 통계는 마라톤 인구를 700만명으로 추산한다. 그들은 아마 최고의 맥주 또는 다른 무엇을 상상하며 달릴 것이다. 독일 베를린마라톤 등 풀코스를 여러 번 완주한 김부경씨에게 ‘마라톤이 좋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완주를 하면 세상 일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쉬고 싶은 유혹을 견뎌낸 나, 결국 해낸 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희로애락이 압축된 자신만의 단편 드라마다. 뛰면서 여러 단면을 압축해 보기 때문에 그 도시를 알아가는 데 마라톤만한 것도 없다. 풀코스는 즉흥적 인간도 계획적 인간으로 바꾼다. 준비 없이는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없으니까. 완주를 못 하고 포기한 경우라도 실패를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는 도중에 자신을 질타하거나 격려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되뇌는 문구(만트라)가 있다. 풀코스는 길어서 더 가혹하다. 하루키는 그런 문구들 가운데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를 으뜸으로 꼽았다.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치면, ‘힘들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결정하기 나름이다.

김부경씨는 “주로(走路)라 부르는 마라톤 로드에서는 낯선 이들과도 동지가 된다”고 했다. 경쟁보다 함께 해내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춘천 공지천교를 출발해 의암호 순환코스를 달릴 마라토너들은 안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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