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대 성씨는 김(金), 이(李), 박(朴)이다. 김이 20%, 이가 15%, 박은 8% 정도의 분포. 인구로는 약 2200만을 차지한다. 그다음이 바로 최씨(崔氏)와 정씨(鄭氏). 각각 233만과 215만. 4.7%와 4.3%. 근소한 차이다(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최와 정, 둘은 맞수다. 무엇보다 한국어 음운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존재다. 최씨부터 보자. 한글 단모음 10개 중 가장 어려운 발음의 외연을 갖는다. ‘최’를 ‘체’ ‘췌’ ‘채’ 등으로 소리 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단모음은 소리 낼 때 입 모양의 처음과 끝이 똑같다. 깨끗하고 산뜻해야 하는 소중한 소릿값이다. ‘됩니다’ ‘왼쪽’ ‘뵐게요’ ‘뇌리’ ‘(명절을) ‘쇠다’ ‘회의실’ ‘쾨쾨하다’ 등은 [ㅚ]로 정확히 발음될 때라야 아름답다.
국토의 서남, 특히 전북 지역의 중장년층은 이 ‘ㅚ’ 발음을 완벽히 구사한다. ‘동아’라는 이름의 박이나 무 비슷한 작물이 있다. 여기선 ‘동외’라고 주로 불리는데 그 후미의 ‘외’까지 기어코 살리는 모습에 탄복한 기억이 있다. “자네, 그건 그렇게 하되” 할 때의 ‘~되’는 또 어떤가. 그 정교함이 놀랍고 고마웠다.
사실 ‘ㅚ’의 발음이 쉽지는 않다. 국제음성기호로 [ø], 전설원순중고모음(前舌圓脣中高母音)이다. 혀가 상대적으로 앞쪽에 위치하되 중간보다 약간 들어올리고 입술은 동그랗게 하라는 얘기다. 37년 아나운서의 커리어로 그 실제적 구현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쉬운 ㅗ[o]부터 입 모양을 만들 일이다. ‘ㅗ’는 후설원순중고모음(後舌圓脣中高母音)이다. ㅚ[ø]와 거의 똑같고 혀의 위치만 상대적으로 뒤에 있다는 말이다. ‘ㅗ’가 힘들이지 않고 뒤에 조용히 숨어있는 혀의 꼴이라면, ‘ㅚ’는 입에 약간 힘이 들어가면서 앞으로 뻗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 입을 동그랗게 그대로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ㅗ[o] 하며 만든 입 모양을 흩뜨리지 말고 혀를 살짝 들어 올려 앞으로 밀면 ‘ㅚ’ 모음이 만들어진다. 이때 힘을 줘서 ‘ㅞ’나 ‘ㅙ’로 입이 벌어지지 않게끔 주의할 일이다.
최씨 국민은 단연코 ㅚ[ø] 발음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김춘수 시인도 대표작 ‘꽃’에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어야 비로소 ‘꽃’이 된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다음은 정(鄭)씨. 정씨는 주요 성씨 가운데 발음이 가장 유의미하다. [ㅓ:]를 구사해야 한다. 울림을 낮고, 깊고, 길게 소리 내야 제대로 정씨를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대적으로 혀끝의 위치를 보통의 ‘ㅓ’보다 조금 높게 잡고 턱을 앞으로 내미는 수고가 필요하다. 음성학적으로 중설평순중고모음(中舌平脣中高母音)에 해당한다. 어렵다면 [정:]은 거의 [즈엉]에 가깝다고 여기면 수월하다.
우리가 지나다니는 ‘거리’와 차이, 간격을 나타내는 ‘거리’는 발음이 엄연히 다르다. 앞은 [거리]요 뒤는 [거:리]다. 보통 국민이 그 소리의 어감을 직감한다면 언어 감수성이 높은 축이다. 鄭은 바로 이 [거:리]의 ‘ㅓ’처럼 소리 난다.
가로줄인 씨실이 세로줄인 날실과 얼기설기 이쁘게 엮여야 번듯한 피륙으로 거듭나는 법. 먹는 [사과]와 미안하다는 [사:과]가 보통의 장단을 품고 있는 씨줄이라면 ‘ㅓ:, ㅕ:, ㅝ:’ 이 셋은 멋들어진 이질과 예외의 소리를 갖는 날줄에 해당한다. “우리말은 장단이 있다.” 맞는 명제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이 있다’고 해야 더 튼실한 진술이다. ‘ㅓ:, ㅕ:, ㅝ:’는 조음(調音)의 위치가 높은 고(高)이고, ‘ㅓ, ㅕ, ㅝ’는 반대인 저(低)에 해당한다. 이걸 지켜야 읽기와 말하기에 전달력이 강화되고 음악성이 살아난다. [전:쟁]이라고 해야 무서운 비극적 상황이 어른거리고, 진실이 아닌 건 [거:짓]이라야 불의와 부도덕이 다가선다. [먼:곳]으로 소리 내야 아득해 뵈고, 벌받아야 할 나쁜 인간은 [범:인] 해야 느낌이 닿는다. [여:론]이라 해야 두루 묻고 들은 듯하고, [변:화]라야 정말 바뀌는구나 실감이 난다. 억울함은 [원:망]이어야 감이 잡히고 [뭔:가] 라고 해야 사뭇 궁금해진다.
‘정중하다(鄭重-)’에는 의젓하게도 鄭이 들어있다. 鄭을 [정:/즈엉]처럼 그윽하고 웅숭깊은 모음을 바탕으로 제대로 발음하라는 신호요 징후가 아닐까. 그래야 비로소 ‘정중하다’.
정통 사극을 떠올리면 존재감이 한층 다가오리라. 신하들이 왕을 뭐라 부르던가. 殿下[전:하]라고 한다. 세자는 邸下[저:하]다. 임금이 있는 곳은 御殿[어:전]이요 그의 명령은 御名[어:명]이다. 이걸 짧게 발음하면 극의 분위기가 살지 않을 터. ‘ㅓ:[ə:]’의 오롯한 좌표다. 가히 우리말의 멋과 맛과 격을 살리는 보루라고 할 만하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이 구성진 높낮이, 조화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