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에 들은이야기인데,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많이 외로워한다고 한다. ‘큰일 났다’ 싶었다. 대통령의 외로움은 위험 신호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나? 여당은 대패했다. 원인을 정리해 보면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야당은 단결했고 여당은 분열했다. 야당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뭉쳤다. 비명계는 침묵했다. 반면 여당은 얼마 전까지 당대표였던 사람이 선거 지원 유세조차 거부했다.
여당 분열의 1차적 원인은 대통령과 여당 주류가 비주류에게 모욕감을 줬기 때문이다. 현직 여당 대표가 성추문에 각종 설화를 이유로 쫓겨났다.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비주류 인사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둥 모욕적인 방식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게다가 그 쫓겨난 당대표는 사법 처리를 한다더니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지가 언제인데 아무 소식이 없다. 진짜로 형사법상 문제가 있었다면 냄새만 피울 것이 아니라 즉각 환부를 도려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니니 전직 당대표 입단속도 안 되고 당내 분란은 커져만 간다.
원래 정당에는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류가 비주류를 다룰 때에도 ‘금도’(襟度)라는 것이 있다.
일본 사례를 보자. 고노 다로(河野太郎) 현 디지털청 장관은 재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와 결선까지 갔다. 기시다에게 고노는 정적(政敵)이다. 그런 고노를 기시다는 장관 자리에 앉혔다. 디지털청이 9선 의원이자 차기 총리를 노리는 고노에겐 경량급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시다는 정적을 내치기보다 실적으로 당과 국민에게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기회를 준 것이다.
중국 방식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당내 자유로운 논의를 허용하되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당내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이미 한쪽은 죽은 목숨이다.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 모두 공직 박탈에 이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중국 공산당은 당내 도전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되면 확실하게 제거한다.
국민의힘 주류가 비주류를 다루는 방식은 일본처럼 세련되지도, 중국처럼 단호하지도 못했다. 그저 모욕감만 주고 입 다물라는 소리뿐이다. 이러니 선거에서 이길 도리가 없다.
둘째, 여당은 인사에 실패했다. 지난 대선 승리는 영남 표와 노년층 지지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영남에서 당시 윤 후보가 벌린 득표 차 270만표는 호남에서 이재명 후보가 250만표 득표 차를 확보함으로써 사실상 중화돼 버렸다. 그럼에도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수도권 지역의 선방에 20~30대 청년층의 일정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를 원한다면, 수도권 지역과 20~30대 청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인사들을 적극 기용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 힘은 영남 출신 독무대이고, 내각은 지난 정부 때 설움받았던 관료 출신들의 한풀이 굿판 내지 십 수년 전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의 ‘노인정’이 되어가고 있다. 15년 전 장관 했던 분을 다시 모셔야 할 만큼 국민의힘에는 사람이 없나? 20~30대 청년층의 목소리, 서울·경기 지역의 고민과 불만은 누구의 입을 통해 반영되고 있나?
윤 대통령이 약속한 ‘파격적 인사’라는 것이 고작 영남 ‘독무대’ 혹은 이명박 정권 ‘동창회’ 만들기인가? 나이가 많거나 영남 출신이라고 해서 역차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균형 감각을 회복하자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과오가 반복된다. 박근혜 정부 시기엔 무려 1970년대 고위 공직 경험자가 대거 기용되었다. 그때의 그 ‘뜨악했던’ 느낌이 마치 데자뷔처럼 돌아오고 있다.
셋째, 윤 대통령에게는 ‘승부수’가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초기 방향은 잘 잡았다. 대일 관계와 한미일 공조를 회복하여 지난 정권의 대중(對中) 일변도 외교를 바로잡았다. 자유와 공정을 기치로 카르텔 혁파를 내걸었다. 좋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카르텔 척결이 좋기는 한데, 우리 국민에게 카르텔 하면, 정치권의 진입 장벽, 법조계 전관 예우, 공정위와 금감원 등 공무원들의 전관 카르텔이 ‘악의 근원’ 아니었나? 왜 난데없이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카르텔’로 지목되어 집에 가져가지도 못하는 연구비가 일괄 삭감되나? 연구비 줄이면 과학기술계의 ‘카르텔’이 없어질까?
지금까지는 야당의 국회 장악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지만 그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야말로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이뤄드리기 위해 이런 정책을 해보려 하니 표를 주십시오’ 하고 구체적 정책으로 국민에게 호소하며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다. 그런데 그런 ‘승부수’가 될 만한 간판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3대 개혁을 내걸었는데, 지금 우리 국민이 그 3대 개혁의 내용이 뭔지 아나?
이대로 가면 윤 대통령은 결국 ‘이재명을 저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저출산 고령화에 지방 소멸까지, 위기에 봉착한 대한민국에 재기의 전환점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일단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이기고 싶으면, 당내 비주류부터 포용해야 한다. 수도권과 청년층에 소구력 있는 신진 인사를 기용하고, 국정 기조에 맞는 간판 정책을 내걸어야 한다. 내년 총선 결과는 이 세 가지 과제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