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추석 다음 날 아침, 김연준 신부님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소록도에서 봉사하셨던 마가렛 피사렉(88) 간호사께서 추석날 오후 오스트리아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곁에 있던 아내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내는 혼잣말로 “그분, 천국에 가셨겠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두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9)와 마가렛 피사렉은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온 뒤 소록도에서 40년 이상 한센인을 위해 헌신, 봉사하다가 2005년 11월 지인들에게 편지 한 통만을 남기고 조용히 고향 인스브루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자신들은 나이가 70세를 넘어서 소록도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뿐 도움이 되지 못하며, 그동안 한국이 많이 발전하여 의료 인력이나 의약품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에 ‘천막을 접고’ 슬프고도 기쁜 마음으로 이별을 고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평신도 재속회(在俗會)인 ‘그리스도 왕 시녀회’에 입회하여 일생을 독신과 청빈을 지키며 타인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한 간호사일 뿐 수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원대로 간호사로 가장 낮은 곳에서 희생, 봉사하며 순명과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들의 선행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조차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제가 호암재단에 관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암재단은 두 분을 1999년 호암상 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하였으나 두 분은 한사코 수상을 사양하였습니다. 재단 측은 두 분의 지인인, 전북 임실에서 봉사 활동을 하시는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님에게 수상 설득을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가 대표로 수상하는 것으로 타협(?)되었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봐 '소록도 천사'로 불린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 간호사. /김연준 신부 제공

2017년에는 두 분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저는 추진위원장을 맡아 힘을 보탰습니다. 노벨 평화상은 주로 전쟁이나 분쟁의 해결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주어지는 것이 통례이고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드문 일일 뿐 아니라, 두 분이 봉사 활동을 끝낸 지 십 수 년이 지나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면서도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일은 결코 두 분의 평화상 수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이 보여준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기리고 이를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외국인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전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여 100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간호사회 총회에 참석하여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였으나 오히려 세계 각지에서 모인 5000여 간호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세계간호사회와 국제적십자회는 두 분에게 각기 봉사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우리 노력의 다른 결실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찾아 뵙고 우리 계획을 보고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피셔 전 대통령과 매주 금요일 금식하여 모은 돈으로 두 간호사의 활동을 지원했던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관계자를 만나 수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회관 앞에 소록도 천사로 불리던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며 마지막까지 베푸는 삶을 살았다. / 장련성 기자

아무튼, 우리가 본격적으로 후보 추천을 한 2021년과 2022년의 수상은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금년 1월 세 번째, 마지막(?)으로 후보 추천을 하였습니다. 설령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서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분에게 고마워하는 우리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고, 두 분의 헌신 봉사 정신의 유산이 우리 사회에도 잘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결성되어 볼리비아, 캄보디아, 인도, 콩고 등지에서 사랑을 전파하는 다양한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소록도 근처 아름다운 바닷가에 ‘나눔연수원’이 건립되어 간호사와 여타 봉사자들이 두 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교육을 받고 힐링도 합니다. 국가나 지역사회에 헌신, 봉사한 사람을 간호 부문과 봉사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는 ‘마리안느 마가렛 봉사 대상’도 제정되었습니다. 10월 27일, 제3회 시상식이 열립니다. 김 신부님이 초청하시니 다른 일정을 다 제치고 다녀올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