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지난여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일찌감치 지워버린 두 글자, 그 ‘수영’을 말이다. 스무 살 여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죽음이, 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치고 지나갔다고 믿고 있다.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같은 과 친구 8명과 춘천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펜션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북한강 바나나보트 선착장.
어쩐지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바나나는커녕, 발사대 위에서 불을 뿜으며 으르렁거리는 로켓처럼 불안해 보이는 기다란 보트 위에 내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건 가느다란 줄이 전부. 아 내려야 하나, 하는 순간 쏜살같이 보트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떠 보니 호수 가운데쯤 왔을까. 조종석에 앉아 능숙하게 보트를 몰던 아저씨가 슬슬 발동이 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신나게 달려 나가던 보트의 앞을 휙 꺾는 순간, 보트가 크게 출렁이며 나는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가 그대로 물속에 꽂혀 버렸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게 바로 이거였다. 저 강물 속 깊이 어딘가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으로 몸을 던져 죽은 처녀 귀신이 너 잘 만났다, 이야기 좀 하자, 발목을 자꾸만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내려야 하나, 찰나처럼 스치던 육감을 믿고 내렸어야 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
구명조끼를 입으면 저절로 물에 뜬다는 말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무릎 아래를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드리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아리가 덜렁덜렁 올라가는 것처럼, 어느 시골 주유소 앞에 외롭게 서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던 풍선 인형처럼, 나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살아야 한다는 몸짓으로 물속을 마구 휘저어 댔다. 그 뒤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훗날 친구들의 증언을 들으니 마침 내 옆에 있던 친구 머리를 공처럼 쥐어 잡고 물속으로 연신 누르면서 발버둥치더랜다. 황소처럼 울부짖던 나는 결국 북한강 물을 몇 바가지 먹곤 기절했고, 그제야 친구가 나를 질질 끌고 나올 수 있었다. 수영을 잘하는 친구였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미안하다 친구야.
사주에도 나는, 나무 목(木)자만 숲처럼 우거지고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니 물가는 삼가라 하지 않았나. 그래서 스무 살 그 여름 이후로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도, 휴양지 해변가 멋진 호텔의 인피니티 풀도 그저 관상용으로 삼았다. 그런데 지난 7월, 남자 친구가 그 어렵다는, BTS나 임영웅 콘서트 온라인 예매 전쟁에 버금간다는, 동네 체육회관의 새벽 수영 강습 신규 회원권을 따낸 것이다. 수강 신청 오픈 30분 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신공 같은 클릭 솜씨로 얻은 결과인데, 차마 못 가겠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7월 1일 내 인생 첫 수영 레슨을 시작했다.
무릎 정도 물 깊이 초급 레인에 서서 25m 앞을 바라봤다. 깨끗한 물 아래로 하늘색 수영장 타일 바닥이 그대로 비쳐 찰랑이는데, 갑자기 그 여름 북한강의 검고 깊은 물속에 내가 있다. 50분이 어떻게 흘렀나. 휘슬이 울리고 정신을 차리자, 초급반 수강생 열댓 명이 모두 모였다.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물 무서워요? 에이 괜찮아요. 처음엔 물속에 얼굴 넣고 음파 못 하는 사람도 많아요.” 다들 나를 향해 박수를 친다. 응원인 건가?
그날 밤, 꿈속에서는 그룹 너바나 ‘Nevermind’ 재킷 속 물찬 제비 같은 아기가 계속 나를 쫓아다니며 놀려댄다. 그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킥판을 잡고 출발선에 섰다. 심장 소리가 귀까지 들릴 지경이다.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엎드려봐요” 하더니, 가볍게 배에 손을 댄다. 그 온기만으로도, 그래도 누가 붙잡아 주고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발버둥치며 5m를 나갔다.
그래, 이렇게 자전거를 배웠지. 처음 두발자전거를 선물받은 날, 아빠가 내 자전거 뒤를 붙잡고는 운동장을 돌고 또 돌고 하던 그때. 그렇게 비틀비틀 발을 굴리고, 서서히 균형을 잡아가면서도 나는 연신 뒤를 쳐다보며 아빠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빠! 어디 가지 마! 나 잡아줘야 해!” “응 그래, 잡고 있어!” 그런데 내 자전거를 붙잡고 있어야 할 아빠가 저기 서 있다. 학교 운동장 끝으로 지는 붉은 석양 속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히 웃고 있다. “거 봐, 되잖아! 탈 수 있잖아!” 정말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수영장에도 아빠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