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고 가을이 오면 옛사람이 그리워진다. 1980~90년대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 뭐니 해도 복싱. 고(故) 김재영 아나운서는 권투 중계의 달인이었다. 상대 선수가 버팅(머리를 숙여 들이받는 행위)을 자주 하면 “의도적이에요. 매너가 참 안 좋네요” 하고, 우리 선수가 그러면 “상대가 버팅을 유도하고 있어요. 저건 당연한 방어거든요. 세상에 매 맞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했다.
링 주위를 빙빙 돌며 아웃복싱을 상대가 구사하면 “놀러 왔나요? 저런 건 복싱이 아니죠.” 한국 선수가 그러면 “네, 좋아요. 권투라는 게 부르도자(불도저)처럼 파고들어야만 능사는 아니거든요.” 저쪽 편이 펀치를 몇 대 맞고 비틀거리면 “심판, 뭐 합니까? 빨리 TKO 선언해야죠. 눈동자가 풀렸어요. 잘못하면 선수 생명이 위독합니다.” 이쪽 편이 휘청거리고 심판이 경기 계속 여부를 물으면 “레퍼리가 이상합니다. 입국할 때부터 말이 많았잖습니까? 우리 선수 사기를 꺾고 있어요.”
S대 국문과 출신에 언필칭 모르는 것 빼고 다 아는 분 중계가 이랬다. 어느 날 자료와 데이터의 중요성 운운하며 건조하고 차분한 중계론을 펼치던 후배의 논박에 맞닥뜨렸다. 담뱃불을 붙이며 그는 일갈한다. “네가 뭘 알아? 스포츠 중계는 재미와 감동이 최고야. 쪼다 같은 놈!”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왔다. 스피치의 구루이며 PC(정치적 올바름)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는 인물. 모 대학에서 연설 말미에 그는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Go, together!” 박수가 나오기 직전, 한국말로 한마디 보탠다. “같이 갑시다!” 그 자리가 감동의 물결로 가득 찼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기시감이 있다.
꼭 60년 전 고 케네디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이다.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장벽 앞에서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을 향해 외친 마지막 백미.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Ich bin ein Berliner).” “나는 베를린 사람, 베를린 시민입니다”가 1차적 뜻이지만 ‘나는 속박받지 않는 자유 시민이다’라는 의미를 품은 것이었다. 생활 물자를 공수로 공급받으며 마치 섬사람처럼 지내야 했던 서베를린 시민들은 크게 위로받고 감격에 젖었다. ‘베를린 연설’이 여태 독일인들에게 각인된 이유다.
두 경우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감동’이다. 감동은 머리보다 가슴이 복무한다. 차가운 이성보다는 뜨끈한 감정이 작동하는 기제다.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관건. “당신들 마음 제가 잘 알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함께 고민하고 풀어봅시다” 이런 콘셉트다. 달리 말하면 감성 영역이고 경험 공유이며 공감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동적인 말하기’는 그래서 누구나 지닌 꿈이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감동받았다는 평가를 들을 것인가. 스스로를 먼저 펼쳐 보이고 나서 타인과 공유하는 지점이 생성되어야만 한다. 이런 교감(交感)이 없다면 감동 역시 난망할 터. 감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라포르(rapport)와 통한다. ‘친근감’ ‘관계성’이라는 뜻이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이입하고, 상대 감정의 흐름도 내 것과 적극적으로 호응할 때 감동은 움튼다.
게임에 빠진 아들이 있다 치자. “넌 대체 누굴 닮아 이러는 거냐? 네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온다.” “게임만 줄곧 하면 좋은 대학을 못 가고 좋은 데 취직도 못 할 테고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되겠니?” “게임을 하면 할수록 공부와는 멀어져. 결국 바보 되는 거야. 알겠냐?” 이런 진부한 설명의 릴레이로는 게임의 늪에서 아이를 구출하기 어렵다.
방법은 하나. 부모 중 누군가가 일단 게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게임 보드를 앞에 두고 함께 악의 무리를 처단해본 후 두런두런 의견을 나눠야 한다. “엄마 아빠가 그 원수 같다던 게임을 나와 같이하다니….” 아들은 마음속 빗장이 스르르 열리며 ‘작은 감동’을 접수하게 되는 것이다. 동질 의식 공유, 공감대 형성이야말로 감동의 가장 친근한 벗이라 할 만하다.
요즘 나를 사로잡은 감동의 주인공은 가수 양지은씨다. ‘미스 트롯2′의 진(眞).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우승 장면에 감복해 역주행으로 모든 영상을 보고야 말았다. “한라산 구름을 화폭 삼아 한 점 한 점 찍어나가세.” ‘붓’이란 노래에선 판소리 아우라에 제주 출신이라는 장소성이 더해져 가슴 저릿한 절창을 뽑아낸다. 질박한 힘과 순정한 기교가 어우러진, 가히 ‘가요계의 김연아’인 듯싶다. “야는 싹수가 달랐제. 목도 좋고, 소리가 착 달라붙고, 뭘 가르쳐주면 쏙쏙 받아 묵어부러.” 스승 김순자 명창의 말. 국악 경연마다 상을 타 오자 나눈 문답은 이렇다. “너는 어째 그리 영리허냐?” “제가 영리한 게 아니고요. 강습소 벽에 걸린 박초월⸱김소희⸱박록주 명창 사진을 볼 적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위해 신장 이식을 한 효심, 이후 배의 힘이 없어 판소리를 포기하고 주부로 살았던 사연, 20년 세월을 제주서 목포까지 배를 타고 가서 국악을 배운 집념. 마스터들의 평가보다 국민 응원 투표와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다른 출연자를 압도한 ‘감동의 힘’이다. 세상은 그래도 아직 커다란 감동의 울타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