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너무 예쁘네요. 저희 맞팔(서로 계정을 팔로하는 것)하면서 같이 육아 소통하면 어떨까요?”

14개월 된 딸을 둔 엄마 김모(34)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낯선 아기 엄마들로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계정을 따라가 보면 아기의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는 또래 엄마들 같지만, 사진과 영상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영유아 의류, 장난감 업체 협찬을 받은 이른바 ‘홍보 계정’이 대부분이란다. 김씨는 “이제 막 돌 지난 한두 살짜리 아기를 부모 마음대로 모델로 세우고 돈을 버는 게 맞는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수익을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녀 얼굴을 노출하는 게 맞는지 걱정 들더라”고 말했다.

자녀가 번 돈은 당연히 부모의 것으로 여겨도 되는 걸까. 우리나라 민법상 부모는 친권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재산권을 ‘대리’한다. 부모라면 당연히 선의로 자녀의 재산을 잘 관리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9년 한 키즈 유튜브 채널에서 쌍둥이 아이들이 대왕문어 먹방을 한 영상. 공개된 후 학대 논란이 일자 부모는 사과의 뜻을 표하고 이 영상을 삭제했다. /유튜브

인스타와 유튜브가 대세가 되고 최근에는 1분짜리 ‘숏폼’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통해 유명해지는 ‘키즈 인플루언서’도 급속히 늘고 있다. 문제는 수익을 내기 위해 무분별한 영상도 적지 않게 만들어진다는 것. 어린아이에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혀 댄스 가수의 춤을 추게 하거나, 아이에게 실제 차를 운전하게 하는 영상, 부모가 싸우는 척하거나 장난감이나 인형을 부숴 아이를 놀라게 하거나 울리는 영상, 대형 문어를 무리하게 먹게 하는 가학적인 영상 등이 퍼져 논란이 됐다. 구독자 수가 1700만명이 넘는 유명 키즈 유튜버 ‘보람튜브’도 과거 아이에게 임신해 출산하는 연기를 시키는 등 논란이 된 영상을 연출하고 촬영한 혐의로 부모가 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을 받기도 했다.

외국에선 돈을 목적으로 부모가 키즈 인플루언서를 학대하거나 그 수익을 전용하는 걸 막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는 추세다. 지난달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소셜미디어로 수익을 거둔 아동은 부모로부터 의무적으로 수익을 배분받게 하는 법안이 도입됐다.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내년 7월부터 자녀가 유튜브 등에 출연해 수익을 내면 자녀의 기여분에 해당하는 수익을 의무적으로 신탁해야 한다. 신탁된 돈은 부모가 출금하거나 접근할 수 없고, 자녀가 18세 이상이 됐을 때 본인만 출금할 수 있다. 부모가 재산관리권을 남용하는 걸 차단하겠다는 것. 프랑스도 2020년 키즈 인플루언서의 수익을 본인이 16세가 되기 전까지 부모가 출금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 법안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는 미성년 연예인 등의 학습권과 휴식권 및 정신적 건강 보호 등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극적인 규정인 데다 재산권 보호와 관련된 조항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속사도 없이 가족끼리 영상을 촬영하고 제작하는 키즈 인플루언서는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 전문가들은 “사회적 변화에 맞춰 아동의 재산권과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의 선의와 친권만 강조하는 현행법 체계에서는 자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내모는 ‘양심 없는 부모’들을 제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역 배우 등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특히 미국은 1921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키드(The Kid)’에 출연해 큰 인기와 수익을 얻은 아역 배우 재키 쿠건이 성인이 된 후 자신이 번 수입을 부모가 탕진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 큰 논란이 되면서 1939년 이른바 ‘쿠건법’이 만들어졌다. 아역 배우나 모델이 수익을 내면 그 15%를 반드시 신탁해 부모가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했다. 현재 키즈 인플루언서를 보호하는 조치들도 이를 확대 적용한 셈. 1994년 영화 ‘나 홀로 집에’로 세계적인 스타가 돼 당시 약 2600만달러를 번 아역 스타 매컬리 컬킨은 1995년 부모가 이혼하면서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쿠건법을 통해 재산의 상당 부분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성년 시절부터 활동한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부모, 가족에게 재산을 일방적으로 뺏기거나 재산 갈등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트로트의 여왕’ 장윤정도 과거 가족과 재산 관련 갈등을 고백하며 “아홉 살 때부터 돈 벌기 위해 장터에서 노래를 불렀다. 강제로 트로트를 해서 너무 힘들고 싫었다”고 했다. 박상수 변호사(법조윤리협의회 사무총장)는 “우리나라는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에 키즈 유튜버도 비슷한 문제가 늘어날 것”이라며 “하지만 자녀의 수익 활동에 대해 부모가 동의할 권한이 폭넓게 인정되는 반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외부에서 금지하거나 개입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사실상 아동의 재산권 등은 방치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키즈 유튜브도 영상을 꾸준히 제작해 업로드하려면 장시간의 촬영 등 근로와 다름없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특히 수익을 목적으로 기획된 키즈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경우 어떤 기준에 따라 개입하고 해당 아동을 보호할지, 아동의 재산권을 어떤 기준으로 보호할지 논의해 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