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숲속을 헤매는 텅 빈 리어카, 폐지 한 장 내주지 않는 콘크리트의 무덤. 빈 수레를 끄는 노인의 등이 활처럼 굽는다. 노인의 가난한 리어카 위로 어느 집 거실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져 박히고, 외제차의 날렵한 탐색 등이 벨 듯 스쳐간다. 콘크리트 숲속을 얼굴 없는 노인의 리어카가 소리도 없이 굴러다닌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밤, 도심의 고급 아파트 사이를 헤매던 그 쓸쓸한 리어카를 생각한다. 8월 한낮의 폭염을 피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동네에 왜 왔냐’는 듯 훑어보는 야박한 눈초리를 피하기에도, 밤이 낫다. 하지만 인적 끊긴 거리에서 그를 반기는 건 ‘주민 외 절대 출입 금지’라는 날카로운 붉은 글자뿐. 보행로를 차단하듯 막아 놓은 성문 같은 아파트 입구 너머 깔끔하게 흰 셔츠를 다려 입은 보안 직원들이 서성인다. 노인은 천천히 리어카를 돌린다. 그 밤, 노인은 리어카에 무얼 담았을까.
거리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노동에서 쉽사리 눈을 돌리지 못한다. 리어카를 끄는 앙상한 노인의 다리를, 쪽파 뿌리를 뜯는 노인의 흙 묻은 손톱을 오래 기억한다. 그 고단한 노동을 생각한다. 퇴근길에 늘 만나던 리어카 끄는 할아버지에게 드릴 단팥빵을 가방에 넣어 다니고, 시장 좌판 할머니의 고목 뿌리 같은 손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하얀 쪽파 한 뿌리를 사고 나서야, 그제야 발길을 옮길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아버지의 유산이다. 나 어릴 적 젊은 아버지는 우리 동네 시장 입구 늘 같은 자리에, 야채며 과일이며 좌판을 벌여 놓은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시며 10년 넘게 단골 삼아 다니시다가 돌아가신 걸 알고는 장례식까지 찾아가셨다. 아버지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우셨다.
작년 여름에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주차 차단기도 없고, 높은 담벼락도 없고, 아파트 동 입구마다 설치해 놓은 보안문도 없다. 아파트 마당 한가운데 있는 테니스 코트는 온 동네 주민들에게 열려 있다. 600세대가 넘는 작지 않은 단지에는 경비 아저씨 몇 분 계시는 게 전부이지만, 보안 때문에 불안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배부받은 주민용 차량 스티커로 지하주차장도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주차 질서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층간 소음 때문에 얼굴 한번 붉힌 일 없다. 보안 장치 없는 아파트 현관문으로는 배달 서비스하는 분들이 수시로 자유롭게 오간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아파트 마당과 사잇길은 지하철역으로 가는 온 동네 사람들의 지름길이다.
아파트 단지 옆에는 역시나 같은 시간 동안 세월을 먹고 있는 오래된 고물상이 하나 있다. 고물상의 녹이 슬고 찌그러진 파란 대문이 열리는 건 새벽 5시부터 오전 9시까지 네 시간. 복잡한 사거리 교차로가 엉켜들기 시작하는 출근길 도로 위로 폐지를 산처럼 쌓아올린 리어카가 하나둘 등장한다. 빠~앙, 빵빵! 날카로운 경적 소리는 더욱 조급해지고, 신경질적으로 차선을 바꾼 차들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올려 사라진다. 뒤에서 보면 사람 키를 넘은 폐지 더미만 바람이 빠져 헐렁거리는 바퀴 위에서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리는데, 깡마른 체구의 노인이 안간힘을 내어 리어카의 손잡이를 붙들고 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끄는 리어카의 무게는 보통 60kg 정도. 몸무게만 한 폐지 더미가 쉽게 움직일 리 만무하다. 노인의 리어카에 GPS를 설치해서 폐지 수집 노동의 실체를 밝힌 ‘리어카와 GPS’라는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동안 13km를 걸으며 끼니도 거른다. 1㎏당 신문지는 137.6원, 폐지는 78.6원. 신문지는 폐지의 두 배 가격이지만, 신문 보는 사람은 적고, 택배상자만 넘쳐나니 리어카엔 주로 폐지뿐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더위 속에서 쌓아 올린 노인의 하루 노동의 값어치는 4680원.
저 높다란 콘크리트 벽 안에서는 이런 세상이 보일까. 초역세권 대단지 아파트 지하로 연결되는 지하철을 타고 에어컨 바람을 막기 위해 얇은 카디건이 필수인 직장에 도착해서 일을 한다. 퇴근 후 수영과 헬스, 독서실까지 단지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한 뒤, 반려동물을 데리고 멋들어진 조경의 산책로를 걷고 마무리하는 하루. 소파에 앉아 신림동 행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에 안도하고 광주에서 폐지를 줍는 60대 노인이 온열질환으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에 혀를 한번 차고는 잠자리에 든다. 타인의 삶과 거리의 풍경은 8시 뉴스에서나 감상하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 타인을 향한 관심의 시선은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넘지 못한다. 그 높은 성벽 안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할까. 아파트 콘크리트 벽이 높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불안해지고 슬퍼진다. 유독 더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다들 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