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KBS ‘아침마당’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당시 나는 경향신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고 있었지만, 그게 방송 출연에 지장을 주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2년이 못 돼 잘리긴 했지만, 이건 내가 기대만큼 못 웃겼기 때문이지, 외부 압력을 받아서는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된 2013년에는, 그때도 난 경향신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까는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MBC에서 새로 만든 ‘베란다쇼’ 패널로 발탁돼 1년간 활동했다.
2017년 9월, 언론 장악을 위해 파업을 시작한 MBC 언론노조는 “기생충학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는 ‘베란다쇼’에 출연하다가 ‘경향신문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칼럼을 쓰고 있다’는 당시 교양제작국장의 발언 뒤 2014년 4월 하차했다”며 나를 정치 성향 때문에 박해받은 사례로 발표했지만, 그건 자기들 파업에 정당성을 주려고 갖다 붙인 것이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해당 프로가 종영한 것은 단지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 뒤 MBC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에도 고정으로 나갔는데, 이게 무슨 정치적 박해인가? 그건 좌파 연예인의 표상으로 알려진 김제동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고, 그의 사망 후 노제 사회까지 본 김제동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여러 프로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치적 이유로 방송 출연이 제한된 건 오히려 문재인 정부 때였다. 총파업을 통해 사장을 몰아내고 방송국 요직을 독점한 좌파는 보수 지지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대신 김어준, 주진우, 김제동 등 자기편에게 마음껏 진행자 자리를 상납한다. 좌파로 봐서 그랬는지 MBC는 내게도 기회를 줬다. 스타의 매니저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이란 프로에 발탁된 것이다. 당시 전참시는 파일럿 프로그램, 그러니까 한번 찍어보고 시청률이 잘 나오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할 예정이었는데, 방송이 나간 뒤 언론 보도는 “전참시가 차별화에 성공,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같은 호평 일색이었다. 작가한테 ‘전참시가 정규 프로가 돼서 내년 초부터 방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운명을 가를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열 끼 중 여덟 끼를 혼밥으로 해결하는 등 일방적 홀대를 당했고, 동행한 기자 중 한 명이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정상적 대통령이었다면 여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그게 안 되면 조기 귀국이라도 해야 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일어날 법했지만, 좌파는 오히려 맞은 기자를 욕했다. 기자가 맞을 만해서 맞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평론가는 중국 경호원의 기자 폭행이 정당방위라는 망언까지 했다. 그때 블로그에 쓴 글이 ‘문빠는 미쳤다’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글이었지만, 내 글은 여러 언론에 보도돼 수많은 대깨문의 공격을 받았다. 그 며칠 뒤 ‘전참시’에서 날 불렀다. 그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두운 사무실 한쪽에 PD와 작가 등등 제작진 10여 명이 모여 있었고, 그 반대쪽엔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난 그 의자에 앉아 그들한테 취조를 당했다.
제작진: 이 글 쓴 거 보니 너는 박근혜 지지자구나?
나: 아닙니다. 저는 대통령이 아닌, 그 지지자들을 욕했을 뿐입니다.
제작진: (내 다른 글을 들어 보이며) 이래도 네가 ‘박근혜빠’가 아니냐?
나: 억울합니다. 그건 반어법입니다.
10여 분간 지속된 취조 후 제작진은 방송 시작할 때쯤 연락을 주겠다며 날 풀어줬다. 집에 간 뒤 난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깟 방송이 뭐라고 그런 모욕적 상황을 참고 견뎠을까. 안 되겠다 싶어 작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방송에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MBC와는 그렇게 인연이 끝났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가수 JK김동욱은 2021년 1월, 10년간 진행한 울산방송 음악 프로에서 강제 하차당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 “Choo하다 Choo해”라고 SNS에 쓴 게 그 이유였다. 이재익 PD는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란 노래 가사 중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란 대목을 소개하며 김혜경 여사의 법인 카드 유용을 비꼬았다가 SBS 라디오 ‘시사특공대’ MC에서 쫓겨났다. 개그맨 이용진은 방송에서 “문재인씨 얘기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가 해당 방송분이 모조리 삭제됐고, 오마이뉴스도 김정숙 여사를 ‘씨’로 표현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 후보자가 보고받거나 요청했던 국가정보원 문건이 30여 건 발견됐고 그 가운데 실행이 확인된 것은 9건이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 후보자가 언론을 장악했다는 것. 얼마 전 민주당원이 된 민형배 의원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이동관 후보자가 언론에 대해서 채찍과 당근을 통해 장악하고 탄압하는 시도를 한 게 사실이라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격이 없다.” 이게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문재인 정권 때 일어난 언론 장악에 대해 침묵했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계속되는 좌편향 방송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공영방송이 자기 나라 대통령이 ‘일장기에만 경례했다’는 가짜 뉴스를 내보내고, 해외 순방 중인 자국 대통령의 사적 발언을 왜곡해 백악관에 전달하는가? 이렇듯 공영방송을 참칭한 방송사들의 농간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는 점에서, 새 방통위원장이 될 이동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보수 진영에 유리하도록 편파 방송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최소한의 균형 감각은 갖춰 달라는 거다. 지금처럼 여야 패널이 1대10인 기형적 비율 대신, 4대 6 정도의 상식적 비율도 맞추면 좋고 말이다. 마침 이동관 후보자도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 복원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잘 지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