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남북한은 3년간 군정을 거쳐 각각 별도로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국가이자 모든 면에서 세계 수준의 선진 국가로 변모하였으나, 북한은 그 반대로 경제적 최빈국이자 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최악의 수준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 동일 선상에서 출발한 두 나라가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국의 기초이자 국가의 설계도인 헌법, 그 내용의 차이이자 그 헌법을 만들어낸 리더십의 차이입니다. 민족 역량의 차이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남북한 모두 같은 민족이니 민족 자체의 역량은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제헌국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의원 200명 전원이 참여한 삼독토의(三讀討議)를 거쳐 7월 12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에서 민주공화제의 원칙을, 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2조에서 주권재민의 원칙을 선언하며 이를 기본 틀로 한 총 103개 조항으로 된 헌법을 의결하고, 7월 17일 이를 공포하였습니다. 4조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정부임을 선언하고, 16조로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국가발전의 토대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84조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여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고, 나아가 86조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고 규정하여 구체적인 사회통합을 꾀하였습니다.

헌법 공포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은 공포사(公布辭)에서 “지금부터는 우리 전 민족이 고대전제(古代專制)나 압제정체(壓制政體)를 다 타파하고 평등 자유의 공화적 복리를 누릴 것을 이 헌법이 담보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일반 국민은 이 법률로 자기 개인의 신분상 자유와 생명, 재산의 보호를 받을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이북 동포에게 눈물로 고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아프고 쓰라린 중이라도 좀 더 인내해서 하루바삐 기회를 얻어서 남북이 동일한 공작(工作)으로 이 헌법의 보호를 동일히 받으며 (중략) 자유 활동에 부강 증진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제헌헌법의 핵심 내용과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지향목표를 명확히 밝힌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 공산당 정권에 의하여 지명된 김일성이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이 차이가 국가 및 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북한이 정통성 없는 소련의 괴뢰 정부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유엔도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였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조선 왕조 시대와 일제 식민 지배만을 경험하였음에도 이처럼 온 국민이 참여하는 총선거를 실시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는 훌륭한 헌법을 제정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출발점입니다. 그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제정된 헌법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헌헌법이 공포된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5대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닙니다. 2005년 주5일제 시행과 관련하여 공휴일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공휴일에서 제외된 결과입니다. 지난 월요일 제헌절 행사도 국회 로텐더 홀에서 열렸습니다. 너무 조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 관점에서도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헌법의 의미나 가치를 생각한다면, 제헌절은 이처럼 가볍게 취급받아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