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닮았다는 말이 싫었다. 종갓집 장손 아버지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란 할머니는 갓 태어난 나를 안아 들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 엄마 닮았네”. 그걸 기억하는 게 사실이냐는 시시비비는 잠시 접어두자. 놀랍게도 나는 그것이 칭찬이 아닌 것도 감지해 냈다. 말끝을 흐리며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웃음기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빛, 장마가 시작되던 6월 말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병원 냄새까지. 새로 산 스펀지처럼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는 순도 100도의 오감 신경을 활짝 벌려, 그렇게 내 탄생의 순간을 온몸 구석구석 기억해 두었다.
내 인생 기억의 첫 장에 대해 유감이 많다. 가깝게 우리 선조 중에서는, 천 년 왕국의 꽃을 피운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신비한 자줏빛이 감도는 알에서 태어났다 하고, 저 멀리 로마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늑대의 젖을 물고 자라났다는데, 이 정도 탄생 신화는 아니더라도 “지 엄마 닮았네”라니. 아들이 아니어서 별 볼일 없을 것 같다는 그 불길한 신탁을 물리칠 만한 예언이 더 있지 않을까 하여 엄마를 추궁했다.
“그날 따라 잠이 안 와서 밤새 뒤척이다가 해가 뜨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런데 담장 너머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새벽녘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대문을 열고 나섰지. 사람들이 마을 뒤편 등산로 입구에 있는 폭포를 향해 뛰기 시작하더라. 등산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물줄기가 거세고 옥빛 물웅덩이가 신비로운 폭포였지. 이미 사람들이 빽빽하게 폭포 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엄마가 그 사람들을 막 비집고 맨 앞으로 갔거든. 세상에, 그 웅덩이에 시커멓고 커다란 이무기가 솟아올라 있는 거야. 입에는 여의주까지 물고 말이야. 날아오르려고 온몸을 비틀며 애를 쓰는데, 사람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르더라. 아뿔싸 했어. 이무기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승천해야 하거든. 그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니 틀렸지 뭐. 아이고 그 이무기 안타깝네, 하고 혀를 차고 있는데 잠이 깬 거야. 그러고 나서 널 가진 걸 알았으니 태몽이지 뭐.”
이거였다. 이무기. 비범한 인물을 예고하는 태몽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그래도 영 켕기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다. 왜 하필이면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지켜봤담. 정녕 아들이 아니라 딸이어서 용이 되어 승천도 못 하고, 웅덩이에서 몸만 배배 꼬다가 말 것인가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밤새 산통을 겪다가 아침 7시에 너를 낳았지. 이무기 태몽에 말띠로 아침 일찍 태어난 네 삶이 기대가 되는 거야. 남들이 들으면 여자애가 팔자 사나워서 어쩌나 하던데 엄마는 네가 씩씩하게 하고 싶은 일 맘껏 하고 살아라 기도했어. 그런데 거 봐, 엄마 말대로 됐지?”
자라면서 엄마와 무던히도 다퉜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건너가던 무렵에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벼슬을 달고 나서는 그 신경질과 포악함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기세등등하여 결국엔 엄마가 울어야 말다툼을 끝맺는 적도 있었다. 그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엄마 기분 따라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 이 옷도 입어보시라 하며 옛 잘못을 뉘우치고 죄 사함을 받으려 했지만 어느새 나이든 엄마는 귀찮다, 힘없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가끔 엄마는 “내 딸이지만 네가 어렵다”고 하신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저릿해진다. 원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돼, 무슨 일을 선택하든 네가 행복하면 되는 거야, 라고 말했던 엄마였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바란 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따라 도전하는 삶을 살았고, 책을 세 권이나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 책을 읽는 건, 마치 일기장을 들켜버리는 만큼이나 싫었다. 그만큼 엄마와 나는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가장 먼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 거리에서 바라보는 엄마가 좋다. 이제야 엄마를 내 엄마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바라보게 된다. 나와 내 동생을 갖고, 당신이 포기한 시간들, 꿈, 그리고 미래.
엄마 집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옛날 앨범을 들추었다. 미간을 잔뜩 찌뿌린 채 카메라를 째려보고 있는 여섯 살의 나,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태권도 도복을 입고 발차기를 하는 어린 동생. 카메라 포커스는 온통 나와 내 동생을 향하고 있는데, 딱 하나, 거기에 엄마 사진이 있다. 장미꽃 넝쿨 뒤에 숨어 미소 짓는 젊은 엄마가 있다. 이제 막 한 남자와 결혼했고,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될 테고, 무뚝뚝한 딸에게 서운해하며 나이 들어갈 여자가 거기에 있다. 그 흑백사진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서서히 빛바래져 가고 있었을 텐데, 마치 처음 보는 사진처럼 이제야 내 마음을 아프게 훅 찌르고 들어온다. 엄마의 말갛고 동그랗게 웃는 얼굴에 내가 보인다. 앨범을 보는 내 옆에서 가느다랗게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있는 엄마의 늙은 등을 쓸어 보다가 울고 말았다. 할머니가 했던 “지 엄마 닮았네”라는 말이 이제는 싫지 않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화장을 지우고 나니 엄마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