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땡볕이 쏟아진 지난 15일.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오른 경북 영천시외버스터미널 승강장에는 부산 금정구에서 온 조모(70)씨가 1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송 친정 언니네 사과밭에 열매 솎는 일 도와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청송까지 가는 데 영천을 들른 건 곧장 가는 버스 노선이 3년 전 사라졌기 때문. 보름 치 짐이 든 가방을 끌고 온 조씨는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하이고, 디다(고되다).”

지난 15일 오후 경북 영천시외버스터미널 승강장에 출발 대기하는 버스가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지역 인구 감소와 코로나 여파로 버스 승객이 줄어들면서 202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버스 터미널 18곳이 폐업했다. /김은경 기자
김천시외버스터미널 매표 창구에 ‘서울 강남 노선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은경 기자

터미널 대합실 안은 한산했다. 마트 두 개가 나란히 있던 자리는 간판만 남아 텅 비었고 ‘백년가게’ 표지가 붙은 빵집 하나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터미널이 지어진 1990년 이곳에 빵집을 열었다는 류모씨는 “대구 가는 버스가 5분에 한 대씩 다닐 적에는 빵도 많이 팔렸는데 지금은 터미널에 종일 사람이 안 온다”며 “코로나 이후로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서 택배로 주로 판다”고 했다.

청송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남광섭(74)씨가 승강장으로 나갔다. 그는 “신장 투석 치료를 받으러 일주일에 두 번씩 영천에 온다”고 했다. 코로나 전에는 청송행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였는데 지금은 두 시간에 한 대다. 그는 “투석한 날은 진이 빠져서 깜빡 (버스를) 놓치면 기다리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병원 다니는 게 일인 사람인데 별수 있느냐”고 했다.

이날 조간신문에는 수도권 광역 버스 입석(立席) 금지 조치 때문에 배차가 늘어나면서 출퇴근 때마다 서울 강남역 도로에 버스 수십 대가 열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소식이 실렸다. 다른 세상 얘기다. 영천터미널은 매표 수입이 줄고 상가 임대료도 예전만큼 걷히지 않아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영천시청과 부지 이전 등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사라진 버스 노선, 위기의 터미널

버스 터미널 위기는 영천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로 시민들 발이 묶인 2020년부터 전국 각지의 고속·시외버스 터미널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강원 원주(2021년 1월), 경북 매화·기성(2021년 7월), 전북 남원(2022년 4월), 전북 익산(2023년 1월) 등 전국 300여 개 터미널 가운데 18곳이 폐업했다. 강원(원주), 충북(영동), 전북(남원·익산), 전남(광양·곡성·고흥·영암), 경북(청도·울진·성주) 등 중소 도시나 농어촌에 있던 터미널이 주로 없어졌다.

버스 터미널이 줄폐업한 이유는 시외버스가 대거 멈춰 섰기 때문이다. 매표 수수료 수입이 쪼그라들었고, 버스를 타려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적으니 매점이나 식당도 문을 닫아 임대료도 감소했다.

지방 인구가 줄고 대도시를 잇는 철도망이 늘어나면서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은 줄어드는 추세다. 연간 버스 터미널 이용객(누적)은 2017년 1억7126만명에서 2019년 1억6898만명으로 감소했다. 한국철도공사 철도통계연보를 보면 같은 기간 철도 이용객(목적지까지 단일 객차 이용하는 승객 기준)은 1억4730만명에서 1억6349만명으로 늘었다. 2020년부터는 철도 이용객이 버스를 넘어섰다.

결정타는 코로나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서 터미널 이용객은 반 토막 났다. 전국 각지를 잇는 시외버스 노선도 하나둘씩 끊기기 시작했다. 전국 시외·고속버스 터미널 운영자들이 모인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협회에 따르면 2020년 1월 8843개였던 시외버스 노선이 3년 만에 6185개로 30% 줄었다. 대표적으로 구미~속초, 포항~고양, 태백~동해, 청주~순천 등을 오가던 노선이 없어졌다. 서울(강남)~김천, 안산~단양 구간을 잇던 고속버스도 그사이 운행을 중단했다. 남아 있는 노선도 상당수 운행 횟수가 줄었다.

◇일상은 돌아왔는데, 버스는 안 돌아왔다

코로나는 일시적 충격이 아니었다. 작년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됐지만 멈춰 선 버스들은 다시 달리지 못하고 있다. 영남 지역 시외버스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만 끝나면, 거리 두기만 풀리면’ 하는 심정으로 버텼는데 회복세가 너무 느려 당황스럽다”고 했다.

같은 날, 경북 김천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는 보는 사람 없는 TV 소리만 한동안 흘러나왔다. 인근을 지나다 화장실을 쓰려는 사람만 간간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구내 매점 셔터에는 노란 ‘임대’ 현수막이, 매표 창구에는 ‘서울 강남 노선 폐쇄’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었다. 운행 시간표 대부분은 흰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목적지가 서울, 대구, 대전, 성주, 청주, 포항인 노선은 전부 지워진 상태였다.

김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는 진주와 안동으로 각각 가는 두 개 노선만 남았다. 유일한 고속버스였던 서울 노선은 2021년 추석을 끝으로 폐지됐다. 없어진 노선은 재개되지 않고 터미널을 찾는 사람은 줄었다. 코로나 유행이 터지기 전인 2019년 하루 평균 298명이 버스를 탔지만 작년에는 32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터미널은 매표 직원 3명을 모두 내보내고 사무 직원 둘이 매일 오전·오후 교대로 출근하면서 매표 업무를 겸한다고 했다. 허균 김천터미널 차장은 “버스 타는 사람은 없고 상가 공실도 늘어나는데 공시지가는 매년 오르니 세금 부담만 늘고 있다”고 했다.

자가용 보급이 꾸준히 늘고 카셰어링 서비스 등 대체할 이동 수단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 김순경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사장은 “예전에는 터미널에 나가면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노선도 없어지고 있어도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니 버스라는 교통수단이 불편한 것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시외버스 업체 상당수가 적자가 심해 적극적으로 노선을 재개하거나 배차를 늘릴 수도 없다. 김 이사장은 “하루 500㎞ 운행하는 버스 한 대를 돌리려면 인건비와 기름값, 차량 유지비 등 해서 평균 80만원 정도가 드는데 하루에 50명도 못 태우는 노선이 널렸다”고 했다. 시외버스 업체도 지자체 재정 지원을 받지만, 시장이나 군수가 특정 노선을 운행하도록 강제하고 적자를 전액 보전해 주는 시내·농어촌버스에 비해 보조금이 상대적으로 적어 “적자 폭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고 호소한다.

버스 터미널 업계에서도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주장한다. 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는 “대도시권 터미널의 경우 수입원을 다변화할 수 있게 스크린골프연습장·동물병원 등 허용되는 편익 업종을 넓히고, 재정 지원만으로 회생이 어려운 중소도시 터미널은 준공영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버스가 필요하다면

포항 죽장면에 사는 김태순(79) 할머니는 보름 넘게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오래간만에 시외버스를 타고 영천 시내 병원을 찾아왔다고 했다. “평일에는 아들이고 딸이고 일하니 나를 데리고 댕길 사람이 읎다(없다). 엔간(웬만)하면 안 나오는데….” 영천에서 죽장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세 번 있다. 병원 진료는 20분 만에 끝났지만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철도가 국토의 대동맥이라면 시외버스 노선은 세동맥이다. 도심에서 먼 지방 인구가 감소하면서 버스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 그래도 여전히 철도가 깔리지 않은 지역에는 버스가 필요하다.

멈춰선 버스는 지역 위기의 증거이자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이 때문에 버스를 이동 복지 차원에서 고민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경북 청송군은 올해 1월 1일부터 군내 버스를 무료화했다. 나이나 주소지 상관없이 누구든 공짜로 탈 수 있다. 무료 버스를 시작하고 3개월간 버스 이용객이 25% 늘어났다고 한다. 전남 화순·담양·강진 등과 경북 상주에서는 아동·청소년 시내버스 요금을 사실상 받지 않는 ‘100원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요금 혜택도 중요하지만 읍·면 지역 주민들이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반경을 인근 시군으로 확대하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버스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승객과 업체가 모두 힘든 시외버스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라며 “광역 지자체가 공공 서비스 차원에서 수요 응답형 버스(승객 호출에 맞춰 다니는 버스)를 운영하고, 지금은 사라진 ‘버스 차장’ 등을 되살려 고령층의 버스 호출이나 승하차를 돕는 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시 영천터미널. 뙤약볕을 피해 승강장 그늘에서 대기하던 시외버스 기사는 “코로나가 터지면서 회사 동료 기사 130여 명 중에 절반은 일을 쉬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 퇴직했다”며 “차가 많을 때는 (출발 시간을) 기다리면서 같이 담배도 태우고 했는데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휴직했던 기사 중 올해 20명 정도만 돌아왔다. 시외버스 기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도 모르지. 관광버스로 갔는지 택배하러 갔는지.” 시외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60대 운전기사는 승객이 한 명도 타지 않은 빈 버스를 끌고 구미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