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한때 우리 집은 분식집이었다. 분식집 아들로서 좋았던 점은, 떡볶이와 어묵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특권이 아니라, 영화를 남들보다 많이 볼 수 있다는 영광이었다. 당시에는 전봇대나 담벼락에 각종 홍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분식집, 만화방, 오락실, 다방 내외부는 광고에 제격인 장소였다. 벽면에 영화 포스터 부착을 허락하는 점포에 극장 측에서는 초대권 몇 장을 대가로 줬다. 사시사철 우리 집엔 초대권이 풍년이었다.

단골손님에게 사은품으로 건네기도 하고, 바쁜 시간에 도와준 학생에게 선물하는 등 엄마는 역시 알뜰한 방식으로 초대권을 활용했다. 나머지는 우리 형제의 몫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1980년대 중반 유행했던 영화는 거의 극장에서 봤다. 록키, 백투더퓨처, 플래툰, 백야, 그렘린, 인디아나 존스, 폴리스 스토리, 고스트 버스터즈, 구니스…. 분식집 아들이 누린 이런 거대한 특권을 일반인(?)들은 몰랐겠지.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엄마는 극장에 전화했다. “우리 아들이 거기로 갈 텐디, 들여보내주쇼.” 초대권이 있는데 왜 굳이 허락을 받고 통보하는 걸까. 게다가 영화가 끝나는 시간을 묻고, 극장에서 우리 집에 닿는 시간을 계산해 “몇 시까지는 꼭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귀갓길에 딴 데로 샐까 봐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동시 상영’ 영화를 못 보게 하려는 엄마 나름의 보호 조치였다.

당시에는 영화 두세편을 연달아 보여주는 극장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성인 영화가 묶음으로 끼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극장에서 전화받은 사람이 시간표를 착각했던 모양이다. 암막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전혀 엉뚱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숨죽이며 화면을 지켜보던 어른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배우들의 의상비가 꽤 적게 들었을 것 같은 영화였다. 제 잘못이 아니라고요!

나만의 ‘할리우드 키드’ 시절이었다. 극장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TV에 방영하는 토요 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 극장을 두루 섭렵했다. 케이블TV도 없고 비디오테이프도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라 그 무렵엔 그것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런 가운데 KBS 명화 극장은 매주 수요일쯤 되면 뿔테 안경 쓴 영화 평론가가 등장해 주말 방영작을 소개했는데, 끝자락에 “이 영화, 놓치면 후회합니다”라는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놓치면 큰일날 것 같은 목소리였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길래 그럴까. 졸린 눈 비벼가며 기다리다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매주 후회했고 매번 자책했다. 그 평론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우리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처럼 쓸쓸하고 슬펐다. 정영일 선생님, 그립습니다. 선생이 극찬했던 영화 ‘엘리펀트 맨’은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에 꼽는다.

며칠 전 영화 ‘파벨만스’를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자전적 영화인데, 자신이 어려서부터 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감독이 어렸을 적 만들었던 영화가 액자 구성처럼 영화 속에 흘러가는 점이 뭉클했다. 영화는 사람을 살릴 수도, 울릴 수도, 즐겁게 만들 수도,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줄 수도 있구나. 천재 감독은 영상으로 자서전을 쓰고 있었다. 부모와 형제, 자신의 인생, 그리고 영화와 예술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였다.

돌아보면 내 또래에게 스필버그는 ‘영화’의 다른 이름 아닐까. 태어나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며 봤던 영화가 ‘죠스’다.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는 탐험가가 되겠다고 동네 뒷산을 파헤치며 다녔다. ‘ET’가 한창 유행일 때는 풀숲 어딘가에 외계인이 숨어 있을 것 같아 주위를 살폈다. ET를 자전거 바구니에 태우고 날아오르는 장면은 ‘소름 돋는다’는 말뜻을 처음 깨우친 순간이었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며 연애를 했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서 눈물 훔쳤다. ‘쥬라기 공원’과 ‘인디아나 존스’가 아직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할 따름이다. 막내딸도 지금 스필버그를 보며 자란다.

거장과 한 시대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의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고, 그의 영화를 보며 함께 나이 들어간다. ‘파벨만스’는 스필버그의 이야기이자 우리 인생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정영일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안 보면 후회합니다”라고 단호하게 소개할 영화 아닐까. 스필버그 감독이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가 각자 남아있는 인생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분식집에 포스터 붙이는 아저씨는 자전거에 달랑달랑 공구통을 달고 찾아왔다. 돌돌 말린 종이 뭉치 가운데 한 장을 뽑아 펼치면, 이번엔 무슨 영화일까 하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도 영화 포스터가 있다. 손님이 계산을 하는 사이, 영화 광고가 계산대에 설치된 LCD 화면 위를 흐른다. “와, 박소담 나오는 영화다.” “설경구, 이하늬, 박해수, 출연진 짱짱한데!” 손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웃음 짓는다.

지금은 저마다 극장 하나씩 손에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도 손님 기다리는 사이 계산대 한쪽에 휴대폰을 세워 놓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그래도 역시 영화는 노란 영사기 불빛 가운데 먼지가 한들거리는 모습이 보이던 시절이 가장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나 한때는 시네마천국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