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당원존 행사에는 자칭 ‘개딸’인 지지자들이 대거 모였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인말. 이 대표의 2030 여성 지지자란 뜻에서 시작했다. 최근엔 극렬, 강성 지지자를 통칭한다. 작년 3월 이 대표의 대선 패배 직후 2030 여성 지지자들이 인터넷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을 열고 스스로를 개딸, 이 대표를 ‘개아빠’로 부르면서 만든 신조어다. 이 대표도 당시 이 카페에 가입하고 “개딸, 사랑해”라고 했다. 이때부터 이 대표 지지자들은 2030 여성이 주를 이룬다는 게 정설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다니는 현장에 2030 여성은 많지 않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학교 다니랴, 취업하랴 바쁜데 현장에 나타나겠냐”며 “인터넷 팬클럽 카페나 유튜브 등 SNS 댓글 활동을 주로 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당원존 행사에서도 2030 여성이 더러 보이긴 했지만 4050 여성이 더 많이 눈에 띄었고 오랜 민주당 지지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훨씬 열성적이었다. 이 행사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는데,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이 대표에게 직접 질문한 당원도 2030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개딸이 아닌 셈이다. 당에선 “개이모, 개삼촌, 개저씨, 개줌마란 표현이 더 맞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날 이 대표는 개딸이 비명계 의원들에게 욕설이 담긴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인신 공격을 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집 안에 폭탄을 던지는 꼴이다” “우리끼리 싸우다 자멸한다” “정치에선 단합이 정말 중요하다”는 등의 간곡한 표현을 써가며 설득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됐어요” “욕 먹을 짓을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대표의 말을 끊고 자기들 할 말을 했다. 이 대표도 이런 행동이 반복되자 불쾌했는지 “그렇게 하지 마시고요”라며 정색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저분들은 개딸로 보기 힘들다”며 “예전부터 민주당 행사에서 자주 보던 얼굴들이다. 문파(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도 됐다가 개딸도 됐다가 하는 그런 분들”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3일 당사 앞에서 열렸던 ‘수박 깨기’ 퍼포먼스 행사에서도 2030 여성은 찾기 어려웠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민주당 비명계를 비하하는 은어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수박 모양의 풍선을 바닥에 놓고 발로 터트렸는데, 이 행사 참석자들 역시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이들은 행사 내내 “윤석열을 타도하자”고 외쳤다. 박용진, 강병원 의원 등 대표적 비명계를 따라다니며 “왜 대표님 등에 칼을 꽂냐” “야, ” 등의 막말을 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놓은 이 대표 지지자들도 2030 여성은 아니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개딸이라며 심한 내용 문자를 했길래 전화해보니 너무 평범한 아이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정대철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뒤에서 문자 폭탄 등을 보내라고 독려하고 이들을 동원하는 그룹도 있다”고 했다. 친명 유튜버들은 이 대표를 쫓아다니면서 생중계를 하고 비명 의원들을 욕하는 영상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 20대 여성인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개딸은 2030도, 여성도 아니다”며 “정치인들이 개딸 뒤에 숨어서, 또는 개딸에 편승해서 민주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개딸’로 소개하며 라디오 인터뷰에 응한 박예슬(30)씨도 “개딸은 2030 남성, 4050세대 분들도 많다”며 “그 전체가 다 민주당의 개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개딸이 2030 여성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표현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굳어진 단어라 바꿀 수도 없고 우리에게 나쁘지 않다”라고 한다. 한 민주당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대선 때 2030 남성 표를 가져간 게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청년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것도 다 옛말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도 2030 표심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개딸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지지층”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30%대까지 밀리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대선 이후 무당층으로 빠져 있던 2030 남성들이 국민의힘으로 돌아서면서 지지율이 빠진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30 표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시에, 개딸로 불리는 2030 여성 표심만은 꼭 지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과거 민주당은 386 운동권과 함께 젊은 층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정치인과 지지자 모두 50대를 훌쩍 넘었고 이제 2030 지지를 받기 위해 국민의힘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 대선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 조사 결과에서도 2030 남성이 윤석열 대통령을, 2030 여성이 이재명 대표를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입장에선 2030 남성을 놓친 것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의원은 “국민의힘이 MZ가 염증을 느끼고 있는 민노총을 제재하는 등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동안 민주당은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내년 총선 때 개딸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