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삼권분립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국민과 언론이 감시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행정권력이, 특히 검찰권력이 국회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의원에 대하여 부당한 체포를 감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사실상 그 역사적 의의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장관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국회 스스로의 자정과 제도 개선, 관행 개선을 해 나가면 논란의 소지를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4년 7월 9일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강금실 법무장관에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한 질문을 했다. 불체포특권을 폐지 혹은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였고, 강 장관도 동의했다. 그런데 현재,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 의원의 입장은 사뭇 달라진 듯하다. 그는 21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해 “야당 탄압 또는 야당 파괴적 기획수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영장이 부당하기 때문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27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률 고작 ‘24%’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구금된 경우라도 국회의 요구로 석방될 수 있다. 이는 헌법 44조에서 보장하는 권리로, 1948년 제헌헌법이 이를 규정한 이래 75년간 이어져왔다. 검찰이 회기 중 현역 의원을 구속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받아야 한다. 법원은 국회 의결이 되면 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불체포특권은 영국에서 1603년 ‘의회특권법’을 통해 최초로 성문화됐다. 미국 연방헌법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헌법에서 널리 채택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대의 활동을 보장해 국회 기능을 강화하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 정권에서 의원들이 부당한 억압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가 컸다. 최초의 체포동의안 국회 상정 사례는 1949년 조봉암 의원이었다.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 의원은 비료와 양곡 횡령 혐의를 받았는데, 이승만 정권에 맞선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됐다. 조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체포특권이 ‘부도덕한 동료를 감싸는 방패막’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제헌국회 시절부터 현재까지 상정된 체포동의안은 총 66건. 이 중 16건만 통과됐다. 나머지는 부결(17건)되거나 임기 만료 폐기 또는 철회(33건)됐다. 15대 국회와 16대 국회 때는 각각 12건과 15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단 한 건도 가결되지 않았다. 20대 국회 시절이던 2018년에는 사학재단 불법자금 수수 혐의를 받던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강원랜드 채용청탁 혐의를 받던 같은 당 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두 의원은 당시 당을 가리지 않고 읍소 문자를 보냈고, 특히 염 의원의 경우 지역 민원 해결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라는 점이 의원들 마음을 움직였다는 얘기가 나왔다. ‘방탄 국회’ 덕에 구속 수사는 피했지만, 두 의원은 모두 지난해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가장 최근에 표결에 부쳐진 체포동의안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었다. 6000만원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는데, 재석의원 271명 가운데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노 의원은 표결에 앞서 의원들에게 “저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불체포특권 폐지, 여야 모두 찬성했는데…
“국민들한테는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사법절차를 회피하기 위해 불체포특권을 악용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습니까? 국민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합니다.” (2001년 4월 9일·새천년민주당 이훈평 의원)
“불체포특권은 온정주의나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동료 의원을 감싸거나 구조하라고 주어진 권리가 아닙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형사사법기관의 업무인 체포나 구금에 관한 사실상의 당·부당을 판단한다는 것도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2004년 6월 30일·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
영국·미국 등 많은 나라가 불체포특권을 약화시켜온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불체포특권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인들 목소리가 컸다. 여야를 막론하고 본회의 자유발언, 교섭단체 연설은 물론, 정치개혁 혁신안과 총선·대선 공약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4당이 전부 불체포특권을 제한(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모두 불체포특권 제한을 공약했다. 실제 2003년 이훈평 의원, 2021년 정찬민 의원(국민의힘)은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대선 때 이재명 후보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추진’을 공약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선거 유세를 하며 “불체포특권 제한에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제가 주장했던 것이다” “불체포특권 같은 것은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저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도와 깡패들이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도 닫아야 한다. 상황이 참으로 엄혹하게,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등의 발언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갤럽이 21~23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57%에 달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여러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헌법 44조에 ‘의정활동과 무관한 개인 비리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단서조항을 다는 방안, 국회법을 개정해 정기국회 회기 중에만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는 방안, 체포동의안 처리 시한을 단축하고 이를 넘길 시 동의로 간주하는 방안, 체포동의안 표결 시 실명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헌법상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위헌 논란이 초래될 수 있고, 무엇보다 개헌이든, 관련 법률 개정이든 국회 결정이 필수적이라 현실화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정부가 의원을 수시로 체포할 수 있다면 국회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이 만약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불체포특권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남용 가능성을 줄이는 노력은 필요하다. 범죄 혐의자를 감싸는 의원과 정당을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