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작년에 <풍경이 있는 세상>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첫 글이, 막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안타까워하고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쓴 ‘기차는 8시에 떠나네’였습니다. 전쟁에 나간 연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한 그리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가수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아울러 글에서 같은 가수의 노래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를 소개하며 전쟁의 조기 종식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린 군인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각종 기반 시설 파괴로 인한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좋은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하루빨리 끝나야 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은 작년 2월 침공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무조건 철수하고, 우크라이나도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는 일단 러시아의 점령 상태를 인정하되 그 관리 방식은 옛 홍콩 등 다양한 사례를 참고하여 타협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피해가 막심한 완승 완패가 아니라 상호 양보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정치 문외한인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01년 9월 25일 독일 연방 하원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 연설에서 푸틴은 “어느 누구도 유럽과 미국 관계의 큰 가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이 가장 강력하고도 독립적인 세계 정치 무대에서 명성을 공고히 하려면 유럽의 능력과 러시아의 인적, 영토적, 자연적 자원과 경제, 문화 및 국방 잠재력을 통합해야만 한다고 확신합니다”라며 통일된 안전한 유럽과 세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즉 미국과 유럽의 유대 관계를 인정하면서 러시아가 유럽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유럽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견해의 표명이었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는 이때 러시아를 신뢰하고 푸틴을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할 인물로 보았습니다. 나아가 ‘러시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없이는 장기적인 유럽의 안보와 복지가 보장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독일 경제의 관점에서도 러시아는 독일에 대한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고 좋은 시장이 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다른 나라를 먹어 치우려고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한 마리 곰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럽 사회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슈뢰더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북유럽가스관사업(NEGPC)’의 주주위원회 의장직을 맡는 등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독일 사회에서는 비난 등 논란이 있었지만,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정책 등은 메르켈 시대에도 계승되었습니다. 브란트 총리의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ehrung)’에 빗대 ‘교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를 내세우며, 경제 협력은 궁극적으로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생각하면, 러시아와의 협력 정책이 현재로서는 유럽과 세계에는 재앙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슈뢰더나 메르켈이 푸틴에게 처음부터 속은 것일까? 서방 세력이 푸틴으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가서 푸틴이 변한 것일까? 이런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을까? 그래서 정치는 어렵고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겠지만, 국제 사회에서 절대 신뢰는 없으며 항상 다른 쪽인 B 플랜을 생각해야 함을 교훈으로 주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 운영이 강력한 한 지도자에 의존하는 나라를 상대할 때에는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