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가 파리 트랜스(Paris Trance)인 제프 다이어 소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를 읽다가 웃긴 장면을 봤다. 파리에 살러 온 런던 남자가 파티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브라질 분이냐고 묻고 여자는 아니라고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러는 당신은 브라질 분이냐고 묻는데, 그도 아니라고 한다. 이 남자가 덧붙이는 말은 이랬다. 브라질 술은 참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말하는 게 카이피리냐다.

아마도 카이피리냐를 아니까 웃음이 낫겠지.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미숙한 시절, 누군가에게 했던 바보 같은 말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들었던 바보 같은 말들도. 나는 왜 그런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할 말을 했던 걸까. 그들은 왜 그렇게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말을 했던 걸까.

카이피리냐는 그 후로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는 이런저런 술을 많이 마시는데 카이피리냐는 마시지 않는다. 나는 생각했다. 브라질 술인 카이피리냐를 좋아한다는, 성의 없이 막 던진 말로 들리는 저 말 대신 어떤 말을 했어야 할까라고. 진실된 말까지는 됐고 최소한의 위트와 교양, 공감력이 있어서 ‘스몰 토킹’을 할 만한 상대로 보일 만한. 네이마르나 펠레를 좋아한다거나 브라질 포르투갈어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보사노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달랐을까? 에 빠우, 에 뻬드라, 에 우 핑 두 까밍유. 이렇게 앞 소절만 부르면서.

아니면 카이피리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칵테일 이름에는 웃긴 조어들이 많고, 웃긴 일화들이 많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하나의 칵테일에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카이피리냐 이야기를 하면서 카이피리냐를 마시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있다는 게, 그들이 동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 누군가에게는 조잡한 이름으로, 또 조잡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게 어딘가에서는 스몰 토킹 유니버스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 인생의 신비여…

카샤사와 라임, 설탕, 얼음으로 만든 '카이피리냐'. /픽사베이

무슨 뜻인지 모르기에 그저 신비로운 카이피리냐(Caipiriñha)는 ‘촌뜨기 아가씨’라는 뜻이다. 카이피라(caipira)에서 왔다고 한다. 카이피라를 포르투갈어 사전에서 찾으면 ‘미개간지의 주민, 시골뜨기, 촌뜨기’ 등이 나온다. 여기에 소녀라는 의미의 어간을 붙여 카이피리냐가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왜 구태여 소녀라는 뜻을 더해 ‘촌뜨기 소녀’를 칵테일 이름으로 했는지 의아하다. ‘촌뜨기’보다 ‘촌뜨기 소녀’가 뭔가 더 칵테일 이름 같긴 한데, 그래도 너무 조야하지 않나 싶다. 카이피라보다 카이피리냐 발음이 더 감미롭긴 하지만.

칵테일 레시피라는 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가변적인 룰이지만 카이피리냐를 제조하는 데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면 카샤사를 넣는다는 점이다. 카샤사와 라임, 설탕, 얼음. 이게 전부다. 카샤사가 없다면 카이피리냐를 만들 수 없다. 카샤사 대신에 럼을 넣은 것은 ‘카이피리시마(Caipirissima)’, 보드카를 넣어 만든 칵테일은 ‘카이피로스카(Caipiroska)’라고 부르니까.

카샤사란 무엇인가. 럼과 비슷해서 ‘브라질 럼’이라고 불리지만 럼은 아니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카샤사는 카샤사다. 둘은 주조 방법이 다르다. 럼은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당밀을 증류하고, 캬샤사는 사탕수수의 즙을 발효해 만든다. 재료도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고, 주조법도 다르다.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먹는 술이 카샤사라는 걸 알고 나니 여기저기에서 카샤사가 보였다. 앞에서 말한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노래 ‘3월의 물’에도 카샤사가 나온다. 그 부분만 가져오면 이렇다.

그것은 물고기, 그것은 제스처, 그것은 빛나는 은

그것은 아침의 빛, 그것은 날라 오고 있는 벽돌

그것은 장작, 그것은 낮, 그것은 좁은 길의 끝

그것은 카샤사 술병, 대로 위의 큰 조각

특유의 유음과 비음이 가득한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이 노래는 소리만으로도 아름다운데, 번역한 것을 보면서 들으니 더 좋았다. 게다가 카샤사가 나오는 노래라니. 이 노래에서 ‘카샤사 술병’에 해당되는 가사는 ‘가하파 지 까나(garrafa de cana)’다. 직역하면 ‘사탕수수 술병’이라는 뜻. 내가 오로지 카이피리냐를 만들기 위해서 산 카샤사51에도 ‘Sugar Cane Spirit’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까 ‘사탕수수 술’이라고.

내가 가진 카샤사 술병에는 카이피리냐 제조법이 쓰여 있다. 카샤사 50ml에 설탕 2티스푼, 라임 1개, 얼음이 재료의 전부다. 8조각로 자른 라임에 설탕을 넣고 짓이기다가(전문용어로는 ‘머들링’이라고 한다.) 술과 얼음을 부어주면 끝이다. 복잡한 재료도 없고, 복잡한 기술도 없다. 오로지 카샤사와 라임과 설탕과 얼음만 있으면 된다. 한국 술에 굳이 비교하자면 설탕을 넣은 레몬 소주랄까. 카샤사와 소주는 다르고, 라임과 레몬의 맛도 다르지만.

쓰고 보니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칵테일에 비교하는 게 좋겠다. 모히토보다는 진하고, 다이키리보다 달다고 하면 적당할까? 모히토와 다이키리는 둘 다 럼을 기주로 하는 술로, 라임을 넣는다. 모히토에는 민트와 탄산수도 넣지만, 그럭저럭 이 셋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모히토와 카이피리냐는 잔 안에서 직접 머들링을 하고 다이키리는 셰이커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흔든다는 것도 다르지만.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 맛이 비슷할 것 같지만 카이피리냐와 모히토, 다이키리는 절대로 같지 않다. 민트를 넣거나, 머들링을 하거나, 셰이킹을 하거나에 따라서,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차이나 변주에 의해서 다른 존재가 된다. 나는 칵테일을 만들면서 아주 소박한 진실을 깨닫곤 한다. 뭔가를 더하거나 뭔가를 빼면 뭔가가 달라진다. 인생에 대한 비유로도 보이는데, 곤란한 것은 내 인생은 내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 인생의 신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