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모국어가 세 가지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한국어에 더해 한국수화언어(한국 수어)와 한국 점자 또한 모국어에 포함된다. 소리로 말을 배울 수 없는 농인(聾人·청각장애인 중 제1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보이는 언어’인 수어(手語)를 사용한다. ‘들리는 언어’와 다르게 수어는 손의 모양과 동작, 표정, 몸동작 등으로 의미를 표현한다.

지난 3일은 ‘한국수어의 날’. 한국수어가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으로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공식화된 날이다. 현재 국내에는 청각장애인이 34만2000여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모국어인 한국수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달 30일 선천적 농인 2세이자 강남대 수화언어통번역학과 외래교수인 변강석(42)씨를 화상으로 만났다. 현재 그는 네덜란드 막스 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에서 네덜란드수어와 한국수어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터뷰에는 김수년 수어통역사가 함께했다.

화상으로 만난 변강석 교수가 네덜란드 막스 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에서 한국수어로 ‘민들레’를 표현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

◇수어의 종류만 157개

‘한국수어’에 ‘한국’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를 묻자 변 교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수어는 전 세계가 똑같냐’고 묻는데,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질문”이라며 “수어도 언어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다르고, 전 세계 모든 언어 목록을 제공하는 ‘에스놀로그’에는 157개 종류의 수어가 올라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수어도 오랫동안 한국어를 대신하는 것이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문법 체계가 다른 별개의 언어”라고 했다. 변 교수는 “한국수어는 손가락의 모양, 손바닥의 방향,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 등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시각적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음성과 문자언어라 두 언어 간 관련이 전혀 없다”며 “한국수어에는 조사 문법도 없고, 어순도 한국어와 다르다. 수어가 모국어인 농인에겐 한국어는 제2외국어를 습득하듯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농인만의 고유한 언어인 수어 역시 콩트, 시(詩), 농문화 등을 담은 수어문학으로 빚어낼 수 있다. 한국 수어문학이 본격화한 것은 2018년쯤부터다. 변 교수가 수어로 만든 문학을 널리 알리는 ‘수어민들레’ 대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다. 변 교수는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도 다양한 예술 활동과 창작물을 보여줘, 수어가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서든 뿌리내려 모두의 언어로 환영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 수어문학을 아십니까?

문학이라 하면 으레 활자를 떠올리지만 시각언어인 수어로 창조하는 문학엔 활자가 따로 없다. 그는 “컴퓨터에 텍스트를 쓰고 지우며 반복 수정할 수 있는 활자와 달리 수어문학은 수어로 계속 생각하고, 시연해보고, 영상을 직접 찍어도 보고, 동작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을 포착하며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어문학을 두고 ‘몸의 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도 덧붙였다.

수어문학은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줌을 전제로 한 예술. 시인과 관객이 한 호흡으로 교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똑같은 시를 시연하더라도 관객과의 호흡에 따라 결과물도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것. 변 교수는 “같은 농인이어도 아이들이 왔을 때 수어를 더 쉽게 풀려고 노력한다. 관객이 일반 청인이라면 청인에게 더 친숙한 마임에 가깝게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진행된 기념식에서는 ‘수화언어법 제정 과정’을 담은 ‘수어민들레’의 창작 연극이 올라갔다. 변강석 교수가 창작에 참여했다. 그 외에도 수어 뮤지컬, 수어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변 교수는 “수어가 주는 시각, 공간, 운동적인 특징은 활자 언어와는 다른 수어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수어만의 호흡과 감성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