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토끼보호연대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수원시의 유기토끼보호소 ‘꾸시꾸시’. 문을 열자마자 토끼들의 주식인 마른풀 내음이 물씬 풍겼다. 토끼장에서 보호 중인 토끼는 72마리. 보호소 운영진인 임혜영(38)씨는 이날 용인시 동물보호소에 오래 맡겨졌다가 안락사 위기에 놓인 토끼 ‘순둥이’를 데려왔다.
이곳의 토끼들은 각양각색 사연으로 한곳에 모였다. 개인이 키우다 버리거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키우다 관리를 포기한 경우, 심지어 초등학교에서 ‘생명 교육’을 이유로 사육장에서 키우다 산에 버린 토끼들도 있다.
유기 동물 중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많이 버려지는 동물이 토끼.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2016~2020 유실·유기동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유기된 토끼는 총 1605마리였다. 해마다 321마리가 버려진 것이다. 계묘년(癸卯年)의 주인공, 귀엽고 앙증맞은 토끼들은 어쩌다 주인들에게 버려지게 됐을까.
◇한 마리 3만원…쉽게 구해 쉽게 버린다
전문가들은 ‘쉽게 구입하고 쉽게 버릴 수 있다’는 게 토끼 유기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개나 고양이보다 덜 부담스럽다는 마음에 토끼를 들였다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고 감당하기 어려우니 버린다는 것이다. 토끼는 작은 동물에 속하지만, 다 자란 토끼의 몸집은 소형견과 비슷한 수준이다. 개체에 따라서는 중형견만큼 자라는 경우도 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한 마리당 3만원 안팎 가격대에, 작은 몸집이어서 토끼는 다들 ‘쉽게’ 키울 수 있다고 여긴다”며 “전시·체험 시설에서도 토끼를 흔하게 배치하니 사람들이 이를 ‘인형’처럼 여겨 쉽게 데려왔다가 쉽게 버리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토끼는 개·고양이와 유기되는 양상도 다르다. 개와 고양이가 도심에서 유기된다면, 토끼는 공원이나 야산 등 풀이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토끼를 자연에 ‘방생(放生)’한다는 생각으로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용인 집토끼(굴토끼)와 산토끼(멧토끼)는 아예 학명도 다른 별개의 생물이라고 말한다. 동물복지연구소 이혜원 수의사는 “집토끼의 평균수명은 8~10년이지만, 야외로 내보낸 토끼들의 평균수명은 길어야 3년 남짓에 그친다”며 “반려동물용 집토끼를 아무런 보호 없이 야외에 ‘방생’하는 것 자체가 동물 유기이고 학대”라고 지적했다.
유기하는 사람을 전혀 특정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김동훈 동물법 전문 변호사는 “반려동물의 보호자를 등록하는 ‘동물등록제’ 대상에 토끼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유기 토끼의 경우 보호자가 누구인지 아예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자체서 버리고, 초등학교서 ‘원정 유기’도
현재 유기토끼보호소에 있는 토끼의 절반은 지방자치단체·기관에서 키우다 유기한 토끼들이다. ‘생태체험’ ‘생명 교육’ 등의 목적으로 토끼를 대량 사육하다가 늘어난 개체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청이 지난 2019년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에 조성한 야외토끼장이 대표적. 당시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야외에서 자라던 토끼 20여 마리가 빠른 번식력으로 한 해 만에 100마리 넘게 급증했다. 급증한 개체 수에 토끼 간 영역 다툼이 발생했고, 폭우에 폐사하는 토끼도 속출했다. 결국 토끼보호연대 등 동물단체에서 구조 활동에 나섰다. 지금은 토끼보호연대에서 정기적으로 배봉산 토끼들의 상태를 관찰하며 치료나 구조가 시급한 경우 조처를 한다.
‘생명 교육’을 목적으로 초등학교에서 토끼를 기르다 ‘원정 유기’까지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은 경기 군포 수리산에 40여 마리의 토끼를 유기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한 토끼를 구조한 뒤 보호소가 지어준 이름은 ‘디올’. 앞으로는 귀하게, 명품처럼 홀대받지 않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토끼장에 있는 토끼들은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있거나, 토끼장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임혜영씨는 “토끼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들”이라고 설명했다. “토끼는 코를 주인에게 콕 찔러 애정을 표시하거나, 몸을 주인 옆에 찰싹 붙여 손을 핥아 주는 다정한 동물”이라며 “토끼를 반려동물로 들일 때는 10년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