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동원 군의 생전 모습. 엄마 이문영씨는 “이번에 보니 동원이 독사진이 많이 없어 그것도 너무 미안하더라”고 했다. /가족 제공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더라면, 그날 하루만 방과 후 교실을 쉬게 했더라면, 밝은색 옷을 입혔더라면….’

지난달 2일 병원 응급실에 심정지 상태로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엄마 이문영씨는 온갖 후회와 자책을 했다. 그날 저녁 이씨는 ‘아이가 차에 치여 크게 다쳤으니 빨리 와보라’는 경찰 전화를 받았다. 금요일 퇴근길에 갇혀 50여 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니 아이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가족이 다 함께 뮤지컬 ‘태양의 서커스’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서울 강남 언북초등학교 3학년 이동원군은 이날 오후 4시 57분쯤 자신이 다니던 학교 앞 어린이 보호 구역 내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당시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28%로 만취 상태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최우영)는 지난달 27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뺑소니)·어린이보호구역치사·위험운전치사,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혐의로 이군을 친 운전자 A씨(40)를 구속 기소했다.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씨가 답했다. “원망으로 살기보단 아들을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군의 부모는 아이가 떠난 자리에 미움 대신 사랑을 심기로 했다. 스쿨존에서 음주 운전자 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이동원군의 이름을 딴 ‘동원 장학회’가 만들어진다. 평소 동원이와 이씨 부부가 다니던 서울 서초구 ‘새로운 교회’의 재정 일부와 동원이 가족의 헌금을 기반으로 장학회의 종잣돈을 만들었고,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부터 약 2주간 교회 성도들과 평소 동원이를 아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함께해 1억원 이상의 성금이 모였다. 장학금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신학생이나 선교사 자녀 등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꿈을 이루기 어려운 학생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동원이 장례식에서 받은 조의금으로는 어린이 재단을 설립한다. 이 재단은 초등학교 인근 교통안전 환경 개선을 위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군의 어머니는 “동원이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동원이 동생과 친구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게 부모인 우리가 남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외된 친구 자상히 챙겨주던 열 살

‘동원이의 좋은 점: 다른 친구들이 별로 놀고 싶어 하지 않은 ○○랑도 친하게 지내는 멋진 아이다.’

동원이가 떠나고 엄마 이씨 휴대전화로 동원이 반 친구들이 보낸 문자메시지 중 하나다. 동원이는 학교에서 모든 친구와 두루두루 잘 어울렸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소외된 친구를 잘 챙기는 아이였다. 이씨가 한번은 동원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동원이는 ○○를 왜 좋아하는 거야?” 동원이가 답했다. “○○는 나 아니면 친구가 없으니까.” 동원이 장례식장에 온 ○○는 그 누구보다 많이 울었다.

동원이는 떡볶이와 탕수육,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는 열 살이었다. 이 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 동원이도 이씨 부부에게 매일 새로운 세계를 선물했다. 야근으로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두 살 터울 여동생을 살뜰하게 챙겼다. 엄마는 아들이 운동 잘하는 골목대장형이길 내심 바랐지만, 동원이는 책을 좋아하고 자신이 새로 습득한 지식을 즐겨 말하는 수다쟁이였다. 키가 자라듯 매일 꿈이 자랐다. 교회 주일 학교를 누구보다 열심히 다녀 목사가 되려나 싶다가도, 어느 날엔 전쟁에 참전하는 용감한 군인이, 그다음 날엔 로봇 공학자가 되겠다고 했다.

이씨는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동원이가 떠난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동원이 부모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세상에 우리 아이 말고도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우리 아이는 떠나면서 기사도 많이 나고 많은 분이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셨다. 장례식장에도 모르는 분이 많이 오셨고, 이메일로도 수많은 위로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처음 경찰 조사에선 가해 운전자의 뺑소니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이 혐의도 적용해 달라는 탄원서가 1만66장이 모였다. 이런 관심을 건강하게 풀어서 변화를 만들어야 동원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교회’ 한홍 목사는 “교회 어린이 학교 활동 사진을 보면 동원이 모습이 안 찍힌 사진이 없을 정도로 동원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아이였다”며 “동원이는 떠났지만, 동원이의 이름이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장학회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시속 30㎞ 제한표시가 적힌 형광색 보호 덮개를 가방에 씌운 채 등교하고 있다. /뉴스1

◇동원이 사고 난 길에 보도 생긴다

동원이가 사고를 당한 언북초등학교 앞 도로에는 보도가 생길 예정이다. 사고가 난 도로는 양방향으로 차가 오가지만, 연석선 등에 의해 구획된 보도가 없고 길 가장자리 구역만 있었다. 보도는 보행자가 편하게 마주 지나갈 수 있도록 너비가 최소 1.5m가 돼야 한다. 이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바꾸면서 아이들이 다니기에 안전한 보도를 만드는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새봄이면 동원이의 친구들, 선후배들은 더 안전해진 보행로에서 등·하교를 하게 된다.

어린이 보호 구역은 아니지만 언북초 학생들이 많이 등교하는 길인 영진 약국 사거리 교차로에 대해서도 주민 공청회를 열고 보도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도로 역시 제대로 된 보도 없이 양방향으로 차가 다닌다. 이씨는 “앞으로 재단을 통해서 이런 위험 환경을 진단해 개선하고, 학교 주변을 안전하게 만드는 활동들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달 5일 언북초 학생들이 인도가 없는 길 가장자리 구역으로 하교하고 있다. 방과 후 수업 뒤 하교하던 동원이가 숨진 장소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강남갑이 지역구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어린이 보호 구역 내 무조건 보행로와 방호 울타리를 함께 설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어린이 보호 구역은 어린이들의 등·하교 시에 교통사고의 위험을 막으려고 지정됐지만 기본적인 보도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동원이 사고가 일어난 곳이 대표적이다.

태 의원실 박효진 비서관은 “동원이 부모님과 언북초 학부모운영위원회 등에서 의원실로 의견을 모아 주셨는데, 동원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전해져 뭉클하더라”며 “해당 개정안은 운전자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응당 보도가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법안”이라고 했다. 지난 26일 국회에 법안이 발의됐다. 오는 3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가 왜 매번 제자리인지에 대한 정책 토론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