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아과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최근 5년간 650곳이 넘는 소아과가 사라졌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아침 일찍 문을 연 소아과로 달려가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응급 진료는 더 심각하다. 소아과 전공의가 줄고 전문의까지 줄줄이 사직하면서 대형병원들은 소아 응급 진료를 축소하고 있다.
1995년부터 경남 창원파티마병원에서 29년째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마상혁(58) 소아감염병과 교수는 “현 소아과 위기의 본질은 무관심”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 교수는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에 심지어 어른들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인 소아·청소년에 대해 극도의 무관심을 보인 결과가 현재의 상황”이라며 “어설픈 대책을 내놓기 전에 국민에게 진정 어린 사과와 반성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땜질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의료계 내에서 ‘괴짜’ ‘불도저’로 불린다. 예민한 의료계 이슈가 벌어질 때 다른 의사들이 몸을 사리는 반면, 마 교수는 늘 거침없는 비판과 소신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경남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 전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인 마 교수는 지난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선 중국발 입국을 신속히 차단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방역·검역 정책과 백신 수급 및 백신 접종 정책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더 적극적인 과학 방역을 해야한다”며 거침없는 비판을 이어왔다.
소아과 위기 상황에 대해 마 교수는 “초저출산인 나라에서 소아청소년과가 무너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정치인과 공무원, 정부가 망국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청년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초저출산, 저수가, 맘카페에 무너졌다”
-소아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소아청소년과 학회에서 작년 9월에 전국 실태 조사를 해보니 24시간 정상적인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가능한 수련병원이 36%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왔다. 수련병원의 70%가량이 이미 소아 응급 진료를 축소했고, 올해 안에 더 축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이가 밤에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지는 것이다. 창원에 있는 창원삼성병원과 경상대병원도 교수와 전문의, 전공의가 간신히 응급진료를 이어가고 있지만 언제 축소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도 많이 줄고 있다.
“현재 소아청소년과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새로운 의사가 충원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전공의 충원율이 80%로 떨어지더니 올해 신규 1년 차 지원율은 15.9%까지 떨어졌다. 밤이 되면 소아청소년 진료에 한하여 무의촌이 되는 지역이 늘고 있다. 지방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서 헤매거나 병원을 찾다 불행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왜 이렇게 급격히 줄어드는 건가.
“일은 힘들고 진료 환경은 어려워지는데 다른 과보다 경제적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소아과 수가가 1년에 아이가 100만명씩 태어날 때와 거의 비슷하다. 그때는 진료를 많이 해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지금은 1년에 25만명이 태어난다. 단순히 계산하면 매출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잔업도 많고 진료 시간과 강도는 높은데 수익률이 낮고, 의사가 줄어드니 당직을 더 서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이대 목동병원 사망사고로 의료진 7명이 기소되는 등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이어지고 이른바 맘카페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자 그나마 일하던 소아과 의사들도 미용, 성형 진료로 넘어가는 실정이다.”
-‘맘카페’ 공격이 그렇게 심한가.
“의학적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험담이 적혀 있다. 나도 하도 당하다가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안 본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안 된 상태에서 출산을 하다보니 불안하고, 그 불안이 집착이 된다. 그러다 아이한테 문제가 생기면 그 집착과 죄책감이 의사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의사· 전공의 부족 탓만 해선 해결 안돼”
최근 일각에선 “의사 수가 부족하니 공공의대를 설립해 기피 과 의사를 충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마 교수는 “단순히 의사 수가 부족하거나, 전공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소아과 진료, 응급이 무너지니 부모들 입장에선 애가 탄다.
“중증 응급 환자가 오면 외부로 보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창원은 경상대병원이나 창원삼성병원이 있는데, 안 되면 부산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울산과 부산도 소아 응급이 많이 문을 닫으면서 부산대 양산병원에 환자가 몰린다. 그러니 교수들이 너무 힘들다. 연구에 진료에 당직까지 서야 하니 죽을 맛일 것이다. 소아 외과는 특히 소아 수술을 해야 해서 난도가 높은데 환자도 줄고 수가가 적어서 기피가 심각하다. 할 수 없이 성인 수술하는 외과 전문의가 아이들 수술을 하는데, 다른 교수님 말이 ‘트럭 수리 전문가가 오토바이를 고치는 격’이라고 하더라.”
-결국 전공의가 부족한 게 문제인가.
“당장 그렇게 보이지만, 나는 전공의만 당직을 서야 한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본다. 전문의도 당직을 서야 하고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전문의가 입원환자와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근무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관행적으로 안됐다. 우리 세대 의사들은 젊을 때 주 120시간 넘게 일했다. 야간에 당직 서고 낮에 바로 일하고. 지금 세대들은 그런 걸 수용 못 한다.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병원뿐만 아니라 정치인, 공무원들이 미리 개선했어야 하는데 그냥 의사·전공의들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다 보니 지금처럼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땜질 대책이 반복된다는 건가.
“소아청소년과 문제는 이 나라 정치와 정부 정책이 종합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근본적 해법은 찾지 않고 계속 단기 대책, 대증요법으로 땜질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비인기과 전공의 지원이 떨어진다고 전공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대책을 반복해서 내놓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과 정치인들 다 소아청소년과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이해도, 관심도 없다. 소아과가 계속 위기에 빠지는 동안 국정감사에서 제대로 한 번 논의된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소아·청소년은 투표권이 없어서 그런 걸까. 어른으로서 지금 상황은 우리 자식, 후손들에게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의사 수가 부족한 게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의사 수가 아니라 의사의 분포가 문제인데, 지역에 의대를 유치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이 자꾸 의사 수가 부족한 것처럼 말한다. 설령 지금부터 의사 수를 늘려도 그 혜택을 보려면 최소 15~20년이 걸린다. 그럼 그사이엔 어떻게 할 건가. 소아과 등 기피 과의 수가를 인상해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의사들이 특정 과와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당장 지방에 의사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장기적으론 지방에 의사들이 만족하고 살 수 있는 거점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의대 만들 예산으로 지방에 교육, 문화 인프라만 개선해줘도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일단은 권역별로 소아응급체계를 만들어서 지방 내에서 최대한 응급 진료가 이뤄질 방안과 시스템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尹, 사과하고 진정한 해법 찾아야”
마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참여해 소아과 위기 해결을 위한 공약을 만들었다. 전공의에 의존하지 말고 대학병원과 수련병원 내 입원·응급실·중환자실 치료를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고 소아과 응급 진료 체계 개선 등의 공약을 만들었지만, 정작 윤 정부 인수위가 선정한 국정과제에서는 이런 공약들이 대거 제외됐다. 마 교수는 “정작 국정과제에서는 빠트려놓고 이제 와서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게 우스운 모양새”라며 “마음 같아선 윤 대통령과 맞짱 토론이라도 하고 싶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캠프에서 만든 공약이 국정과제에선 대거 빠졌다고.
“캠프에 참여한 다른 의료 전문가들에게도 열심히 자료 만들어서 보냈는데 이메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 의료 전문가들마저 소아과에 관심이 없으니 정치권과 일반 국민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겠나. 사회 전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방치하고 무관심한 것이 소아과 위기의 본질이다. 대통령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해결이 될까.”
-결국 미래 세대가 피해를 보게 될까.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소아·청소년 사이에서는 비만, 고지혈증이 계속 늘고, 20대에서는 당뇨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같이 키 150~160㎝에 몸무게 100㎏이 넘는 아이들이 병원에 줄줄이 찾아온다. 소아·청소년 의료 체계가 무너진 결과가 이런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소아·청소년도 국가건강검진을 하자고 오래전부터 주장했는데 정치권과 정부가 늘 ‘예산이 없다’며 외면만 했다. 이제 의료 비용은 더 늘고, 성인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생산성도 떨어지고 가임 여성은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의료 전문가들은 소아 비만과 청년 당뇨를 제각각 다른 문제로 보는 것 같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