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요새는 휴대폰을 이용해 결제하는 손님이 워낙 많아서,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손님 휴대폰을 지켜보는 것이 하루 일과다. 어떤 기종의 휴대폰이 유행하는지 자연 알게 되고, 어떤 연령대 손님은 주로 어떤 결제 수단을 선호하는지 가늠할 수 있고, 어쩌다 손님 휴대폰의 배경 화면을 슬쩍 보게 되는 경우 또한 흔하다. 배경 화면뿐인가. 어떤 동영상을 보고 있었는지, 무슨 게임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편의점에 들어왔는지, 혹은 누구랑 통화하다 계산대 앞에 섰는지 알게 되는 때도 있다.
그 손님도 그런 손님이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랑 함께 편의점에 왔다. 아이가 과자를 고르는 동안 누군가와 계속 통화 중이었다. 아이는 계산대 위에 젤리 한 봉지를 올려놓았고, 결제를 위해 통화를 멈추고 휴대폰을 잠깐 내려놓은 사이 대화 상대방의 이름이 보였다. 방화범. 아이가 손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엄마, 아빠가 뭐래?” “잠깐 기다려봐.”
남푠, 썩을놈, 웬수, 마눌, 서방, 집주인, 동거인, 짝퉁 강동원, 절세미녀, 보물1호, 꽃사슴, 높은분…. 배우자 이름을 휴대폰에 저장하는 별별 아이디어를 다 봤지만 ‘방화범’이라니! 오늘의 발견은 꽤 유니크했다. SNS 친구들에게 이 사연을 소개했더니 성이 방 씨에 이름이 화범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전국에 방화범이란 성함을 갖고 계신 모든 분들께 정중히 사과드리며, 일단 별명이라는 전제 아래, 이 별명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는 각자 상상에 맡겨야겠다. 그 손님의 배우자는 대체 어디에 그렇게 불을 지르는 것일까.
당신은 휴대폰에 배우자 이름을 어떻게 저장하셨나요? 평범하게 이름 석 자만 적은 경우도 많다는데, 때로 어떤 평범함은 무심함이 된다.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의미로 풀이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름 뒤에 님을 붙여 가령 ‘봉달호님’이라 저장한 경우도 있다는데, 어색한 존대는 비꼬는 뜻이라 해석한다면 그 또한 내 마음이 배배 꼬인 탓일 게다.(애달프다. 내 아내가 나를 그렇게 저장해 놓았다.) 어쨌든 누군가를 별명으로 부른다는 건 특별함의 의미를 선물한다는 것. 꽃사슴이든 방화범이든 내 인생의 ‘웬수’가 되었든 나에게 그가 갖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확, 불을 질렀겠지.
별명 때문에 재밌는 일들이 많다. 편의점 업계에는 OFC라는 직업이 있다. 본사에서 영업 관리를 담당하는 사원을 그렇게 부르는데, 1년 넘게 우리 점포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6개월에 한 번 OFC가 바뀌기 때문에 나중엔 점차 이름조차 잊는다. 내 나름의 별명으로 저장해놓는다. 백수정이란 이름의 OFC는 화이트크리스탈, 고향에 대한 긍지가 높았던 강원도 출신 OFC는 감자의힘, 말하는 속도가 유난히 빨랐던 OFC는 초특급속사포, 온갖 홍보물을 갖고 와 점포에 붙이기 좋아했던 OFC는 덕지덕지…. 어떤 OFC의 별명은 ‘매우중요’였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안을 문자메시지로 보낼 때도 “※ 매우 중요”라고 당구장 표시까지 붙여 보냈기 때문.
한번은 그 OFC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그동안 나눴던 휴대폰 대화창을 열어 보여줬다. “이봐, 내 말이 맞지?” 하는 순간, 저장해놓았던 그의 별명도 노출되었다. ‘OFC-매우중요’ 당사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매우 감동한 표정이었다. ‘제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요?’라는 표정. 그는 자신의 문자 습관을 아직 모르고 있었는가 보다. “그건 아니고…”라고 하려다가 멈췄다. 때로 어떤 오해는 의도치 않은 감동을 부른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 OFC 별명은 ‘아직이름모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하니 많은 OFC를 겪었고, 이젠 이름을 묻는 일조차 권태로워 그랬나 보다. 아직이름모름 님에게 방금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경영주님, 지난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도 매출 상승을 위해 저희 함께 파이팅해 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체 문자로 보낸 것이겠지만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의 조용한 관심과 직업적 열정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새해에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뒤늦게 넌지시 물어보는 일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다.
올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저장하려나. 썩을놈이든 절세미녀든 보물1호든 평생 함께할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내 나름의 별명을 붙여놨던 숱한 사람들에게도 조용히 안부를 물어야겠다. 잊고 있던 이름들에 대한 기억도 하나씩 더듬어봐야겠다.
신년 메시지를 보내려고 휴대폰에 담긴 목록을 살폈더니 ‘평론가 선생님’으로 저장한 번호가 있다. 진짜 직업이 평론을 하는 분인지, 뭐든 묻고 따지기 좋아하는 다른 편의점 점주에게 그런 별명을 붙였던 것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세요?” 물어보려니 좀 뜬금없을 것 같다. 끝 자리가 1970인 분, 먼저 연락 주시라. 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 가운데 가장 특이한 별명은 ‘눈꽃선녀님’이다. 당신의 짐작대로, 함께 사는 그분이시다. 아내여, 새해엔 상호주의 원칙 정도는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