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는 라디오 생방송 시작 5분 전까지 인터뷰 사진 촬영을 했다. 촬영 기자가 시계를 보며 불안해하자 “우리 제작진은 1분 전에 모두 ‘스탠바이’된다. 걱정 마시라”며 웃었다.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찍은 모습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금희(57)는 과거 자신이 진행한 KBS ‘아침마당’에서 만난 노부부에게서 말하기의 핵심을 배웠다고 했다. 예순 넘어 배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무학(無學)의 아내와 그를 도운 남편의 사연이었다. 남편은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지만 아내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내는 낮에 김매고 밭을 일구면서 영어 단어를 중얼거렸다. 시험 기간이면 밤 늦게까지 공부하기 위해 냉커피를 한 사발씩 들이켰다. 그래도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절망했다. 그때 남편이 슬며시 던진 말이 아내에게 등대처럼 환한 빛을 비췄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지잖아요. 물이 밑으로 빠지니까 눈에는 안 보이지만 며칠 후엔 콩나물이 쑥 자라 있지요. 공부도 그런 법이에요. 아무 소용 없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는 새 실력이 쑥 늘어나니까요.”

이 말 덕분에 아내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중·고교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이금희는 그때 깨달았다. 어려운 고사성어를 들먹이거나 격언을 인용하지 않고 그저 아내 눈높이에 맞춰 말해준 게 더 큰 힘을 줬다는 것을.

“새해가 되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덕담을 주고받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어지잖아요.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싶어지고요. 하지만 그런 말은 기억에 남지 않아요. 도움도 되지 않고요.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것. 그것이 좋은 말하기의 시작입니다.”

말 잘하는 게 ‘스펙’이 된 시대, 그러나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말하기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금희는 옆집 언니, 혹은 누나처럼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모두가 달변이 될 수는 없다. 눌변이라도 필요한 말을 적절히 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얼마 전에는 34년 방송 경력을 바탕으로 말하기 비법을 정리한 책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덕분에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전국을 돌며 말하기 강연과 북토크를 열고 있다. 일요일이던 새해 첫날 아침에도 강연 방송을 녹화했다. 7년 전 갑작스러운 ‘아침마당’ 하차 이후 대중에 잊혔다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금희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이금희는 “태어나서 지금처럼 바쁜 건 처음이다. 7~8개 방송을 했던 시절보다 더 정신이 없다”며 웃었다.

미사여구? “무조건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세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말하기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례적이다. 사람들은 왜 말하기에 관심이 많을까.

“기술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효과적인 말하기를 통해 좋은 인간 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말을 잘하는 게 사회생활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말하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주변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이 말하기 학원에 등록하는 심정으로 내 말에 귀기울이는 것 같다.”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신뢰감을 주는 것. 아침마당에서 2만3000명의 초대 손님을 만나면서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에게 가장 신뢰감을 느꼈다. ‘보험 여왕’을 차지한 보험설계사들이 딱 그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작았다. 흔히 목소리가 우렁찰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고가 났을 때 믿고 의논할 수 있는 건 꼼꼼하게 사고를 처리해주는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신뢰를 주는 말하기를 할 수 있나.

“‘낮게, 천천히’ 말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높고 빠르게 말한다. 20~30대까지도 대개 그런다. 나도 초년생 때는 톤이 높고 빨라서 당시 영상을 보면 민망하다. 발랄하고 귀엽게 보이지만 신뢰는 잘 가지 않는다.”

-면접이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효과적인 연습 방법이 있을까.

“효과적인 말하기는 ‘빼기’에 있다. 한 사람 혹은 한 주제에 대해 A4 용지 100장 분량 자료를 모은 뒤 다 읽고 10장 분량으로 줄여본다. 나중엔 1장으로 압축하는데 이걸 머릿속에 저장해 두면 어떤 상황에서든 유용하게 쓸 수 있다. ‘IMF 금 모으기’ 생방송에서 효과를 본 방법이다.”

-금 모으기 생방송을 어떻게 진행했길래.

“금 모으기 캠페인 생방송을 8시간 동안 진행했는데 행사장 로비에서 금을 들고 오는 국민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분이 올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지 불확실했기 때문에 당시 IMF 금융 구제 관련 신문 기사·사설을 찾았고, 임진왜란 등 과거 국난이 있을 때 민초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아봤다. 이걸 ‘빼기’ 방식으로 머리에 압축해두었더니 생방송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스튜디오 앵커가 ‘현장에 이금희 아나운서 연결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뻔한 오프닝 대신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이런 식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말하기를 연습하면서 피해야 할 게 있다면.

“발표를 하든, 면접을 보든 가장 안 좋은 방법은 말할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쓰고 그대로 외는 것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를 줄줄 읽는 선생님에게 집중이 잘 안 됐던 기억 없으신지. 방송 큐카드처럼 문장 대신 키워드 위주의 단어로 말할 내용을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아무 말 대잔치가 되겠지만 익숙해지면 나중엔 어떤 주제든 논리적인 스피치가 가능해진다. 아나운서 시절 자주 했던 방법이다.”

-사회생활에서 처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대처하는 비법도 있는지.

“나는 남의 부탁 거절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요즘처럼 섭외 요청이 많을 때는 더더욱(웃음). 그런데 거절도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를테면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라고 한 뒤 다음 날 다시 연락한다. ‘일정을 살펴봤는데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빨리 연락을 드려야 다른 분을 섭외하실 것 같아요. 행사 잘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완곡하지만 거절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를 배려해 조금이라도 일찍 답하는 거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이금희.

부장님도, 신입도 말하기부터 배워야

딸 다섯 중 넷째로 태어난 이금희는 유독 말하기를 좋아했다. 방과 후 집으로 달려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시시콜콜 중계하는 것이었다. 그런 딸을 어머니는 한 번도 귀찮아하거나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말 잘하는 이금희를 만들었다.

-말을 잘하는 게 왜 어려울까.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을 보면 대개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말하는 걸 못 하게 막은 경우가 많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두려워진 것이다. 20년 동안 대학에서 말하기를 가르쳤는데 의외로 젊은 세대도 말하기가 미숙한 경우가 많았다.”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소통을 자주 하는데 왜 말하기에 미숙할까.

“과거엔 자장면을 시키려면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말로 주문했다. 식당에 가도 ‘오늘 뭐가 좋아요?’ 묻고 주인이 답을 하는 의사 소통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비대면이 일상이다. 모든 주문을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나 앱으로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소소하게 말을 할 기회가 크게 사라졌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는 말처럼 말도 자주 써야 느는데 이런 환경에서 말 훈련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가르친 학생들은 말하는 데 어떤 문제점을 보였나.

“요즘 학생들은 면접에서 정형화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는 사람처럼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인공지능(AI) 로봇이 등장한다. 요즘 사람은 점점 AI처럼 되고, AI는 사람이 돼가는 것 같다. 모범 답안을 달달 외워서 면접 보면 AI와 뭐가 다를까. 그건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개성 있는 스피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걸 찾아 정리하면 된다.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은 답안을 말하니 말에 힘이 없는 거다. 예전에 1000대1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후배 아나운서는 취준생 시절 초등학교 친구에게 술을 사면서 ‘나 초등학교 때 어땠어?’ ‘나 4학년 때 어땠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때 들은 과거 모습들을 정리해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써먹어 합격했다.”

-’부장님’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자주 지적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진행하는 생방송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에는 ‘부장님 때문에 힘들어요’라고 호소하는 직장인 사연이 많이 들어온다. 부하 직원이 알아듣기 어렵게 업무 지시를 하는 일방통행식 대화 때문에 힘들다는 불만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부장님들이 부하 직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장님들은 부서장 회의, 다른 직원의 보고를 통해 전체 업무의 100퍼센트를 파악하지만 직원은 자신이 담당한 부분만 알기 때문에 소통에 장애가 생기기 쉽다. 많은 부장님들이 이 점을 놓친다.”

-당신도 기성세대인데, 비슷한 경험이 있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조카가 회사 일이 힘들다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라떼(나 때)는...’이라고 했다. 조카가 ‘그건 이모 얘기고!’라며 바로 핀잔을 주더라(웃음). 나중에 운전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잔소리는 내비게이션과 같다고. 잘 아는 길에서는 내비가 알려주는 안내 음성이 성가시다. 어른들 얘기를 잔소리로 여기는 이유는 뻔히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반면 초행길에선 내비의 길 안내가 절대적이다. 그러니 후배·자녀가 먼저 물을 때까지 어른들은 기다려주는 게 현명하다. 책에 이 사례를 쓰자 조카가 ‘이모, 미안했엉’라고 카톡을 보냈더라, 하하!”

KBS ‘아침마당’ 진행자였던 이금희(오른쪽)와 손범수 아나운서. /KBS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침월급형 인간’

이금희가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98년 6월 KBS ‘아침마당’의 진행을 맡으면서다.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쥔 채 출연자들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은 이금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2016년 6월30일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로 마지막 방송을 할 때까지 18년 동안 이상벽, 손범수, 김재원 등 호흡을 맞춘 남자 진행자만 5명, 인터뷰한 출연자는 2만3000여 명이었다. 프로그램의 간판이었던 이금희가 아침마당에서 하차하자 당시 KBS 홈페이지에는 진행자 교체에 항의하는 시청자들의 글로 도배됐다.

-하루 아침에 교체돼서 논란이 컸다.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하차 통보를 받기 한 달 전쯤 가까웠던 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경험 때문인지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차 기사가 나왔을 때는 걱정하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KBS 본관 의무실에 가서 휴대폰 전원을 끄고 잤다(웃음).”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했나.

“아침마당에서 하차하고 두 달 정도 지나 사석에서 한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 내가 ‘아침마당을 진행한 게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처럼 먼 과거 일 같다. 내가 괜찮은 건가’라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현재에 집중해 사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 내가 정상이구나, 하고 안심했다. 나는 내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와 미래에만 관심이 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마지막 방송을 한 다음 날, 알람 설정을 안 했더니 아침 9시에 깼다. 18년을 방송했으니 새벽에 저절로 깰 줄 알았는데 눈 떠보니 9시라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동안 월급 때문에 일찍 일어난 거였구나,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침월급형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오히려 요즘은 지방 강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 제 시간에 못 일어날까 봐 엄청 긴장한다.”

-여성 진행자로 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침마당은 여성 진행자가 남자와 같은 메인 역할로 동등하게 방송을 진행했다. 내가 특출나서라기보다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여성 사회 활동이 활발해진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방송국을 포함해 기업 공채에서 여성 합격자가 절반 가까이 되던 시절이었다.”

-아침마당을 오래 진행하다보니 당시 ‘제작진 인사에 관여했다’ ‘아침마당의 권력’이라는 말도 있었다.

“(내가 권력이라는 걸)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랬다면 내가 계속 방송을 했어야 할 거다. 누구와 방송 하고 싶다고 청탁한 적도 없다. 내 교체는 제작진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작고하신 송해 선생님은 평생 적금을 드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개편 때마다 PD 눈치를 보실 정도로 본인이 언제 전국노래자랑을 그만둘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마음가짐도 송해 선생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한 번 맡으면 평균 10년가량 했더라. 장수 비결이 있는지.

“KBS ‘인간극장’의 내레이션 녹음을 한때 새벽 5시에 한 적이 있다. 겨울에 머리 감고 말리지도 못한 채 출근하면 딱딱하게 얼었다. ‘아, 내가 5시부터 목소리를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던 어느날 대구에 사는 30대 여성 환경미화원의 사연을 녹음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한겨울에도 새벽 2시반에 나가 차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 청소를 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편하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이런 방송 출연자들이 내가 매너리즘에 빠질 뻔할 때마다 나를 죽비(竹篦)로 내리쳐주셨다.”

-1991년 ’6시 내고향’의 초대 진행자를 맡게 된 과정도 재미있더라.

“신입 시절 아나운서 국장이 ‘너처럼 촌스러운 아나운서는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는 나의 장점을 높이 산 칭찬이었다. 화려하고 세련됐던 다른 동료 아나운서에 비해 나는 서울 출신인데도 패션 등에서 촌스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걸 친근감이라 생각하고 내 장점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당시 내 고민을 담은 수필 ‘촌스러운 아나운서’를 썼는데 이게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웃음).”

“난 ‘예능 신생아’... 기대하시라”

이금희는 지난해 개그맨 박명수, 웹툰 작가 이말년과 함께 방송한 ‘거침마당’을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에 본격 출연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대본대로 진행하는 교양 프로그램과 달리 즉흥적인 애드립이 중요한 예능은 방송 경력 30년의 이금희에겐 새로운 도전. 속사포 랩을 쏟아내고, 메이크업한 얼굴에 검정 유성펜으로 수염 분장을 그리는 등 망가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 예능을 시작했나.

“아침마당을 그만둔 후 한동안 비슷한 콘셉트의 토크쇼 섭외만 들어왔었다. 그런데 출연자가 아침마당에서 만났던 분들과 크게 겹칠 테니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다 거절했다. 평소 내가 남 웃기길 좋아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이 언니 시트콤 나가야 한다’고 했다. 예능은 내가 늘 도전하고 싶었던 분야였다.”

-예능에서 망가지는 게 창피하지 않나.

“(교양 프로와 다른) 재미와 쾌감이 있다. 아직 고정 프로그램은 1개로 예능에선 ‘신생아’에 가깝다. 예능에 새 경쟁력을 갖춰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를 국민 아나운서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내 예능 점수는 60점도 안 되는 것 같다.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게 없어서, 하하!”

-홈쇼핑 출연 제안도 많았다. 억대 연봉을 받았을 텐데.

“최유라씨 같은 스타 방송인들처럼 홈쇼핑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결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이금희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실은 너무 오랜만에 들어본 질문이라…. 이 나이에 결혼에 대해 말한다는 건 이런 것 같아요. 오후 3시에 누군가를 만나서 ‘점심 먹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 쉽지는 않겠죠. 그러나 기회만 있다면 오후 4시든, 5시든 점심을 먹을 생각이에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