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입, 인천의 다섯 소녀가 여상을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한다. 엉뚱한 태희(배두나)는 아버지의 목욕탕 일을 무보수로 돕고 야심찬 혜주(이요원)는 연줄로 증권사에 사무 보조로 취직한다. 쌍둥이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는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팔고, 조부모와 어렵게 사는 지영(옥지영)은 텍스타일 디자인 꿈을 미루고 생계를 위해 전전긍긍한다.
고교 시절 단짝이었던 이들의 우정은 사회로 나서면서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특히 서울로 진출한 혜주와 형편이 어려워 판자촌에서 사는 지영이 갈등을 빚는다. 지영이 길에서 구조한 아기 고양이 티티를 생일 선물로 건넸지만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돌려 보내는 등, 생계의 어려움으로 그늘이 진 그를 차차 외면한다. 둘의 갈등을 착하고 무던한 태희가 봉합하려 애쓰지만 상황은 되레 나빠진다. 혜주는 서울의 삶을 맛보면서 서서히 고향 친구들과 거리를 두려는 한편, 지영은 이런 혜주를 이기적이라 여기며 마음을 닫아버린다.
지영과 혜주의 갈등은 5인방이 서울 동대문에서 가진 단합 대회에서 표면으로 불거진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혜주에게 질린 지영은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문자를 보내도 답하지 않는 혜주의 집으로 태희가 찾아간다. “친구가 찾아온 건 처음”이라는 지영의 할머니는 태희에게 찐만두를 한 접시 대접하는데,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태희는 물 한잔 달라는 부탁도 채 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만두를 다 받아 먹고는 목이 메어 가슴을 콩콩 친다.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4K 고해상도로 리마스터 재개봉한 ‘고양이를 부탁해’는 참으로 ‘짠한’ 영화다. 돌아보면 격변의 시기였던 새 천년에 떨려나듯 사회로 진출한 다섯 소녀에게 사회는 냉혹하다. 영화는 참으로 담담한 시각으로 이들의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서 한층 더 마음이 아프다. 이런 영화의 정서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는 게 바로 태희의 만두 신(scene)이다.
‘친구가 찾아온 건 처음’이라는 할머니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영이네의 형편은 어렵다. 어린 마음에 차마 친구를 데려올 수 없을 정도의 현실. 판잣집은 천장에 균열이 심하게 일어나 모래가 빗물처럼 새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에서도 하나뿐인 손녀의 친구가 찾아오자 할머니는 접대에 최선을 다하고자 만두를 내민다. 그 마음을 태희는 어린 스무 살 치고 너무 잘 헤아리기에 할머니가 내미는 대로 만두를 다 받아 먹고는 목이 메어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심경이 복잡해 연락에도 답하지 않는 지영을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따뜻한 마음을 끝내 나눠주고 간다.
조금 과장을 보태 나는 만두를 먹을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린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할머니 마음이 흡족해질 때까지 만두를 꾸역꾸역 먹는 태희의 마음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환영받지 못하는 음식은 원래 슬프고, 그걸 알고도 전부 다, 맛있는 척 먹어야만 하는 마음은 더더욱 슬프다. 어머니, 아니면 누구라도 호의를 잔뜩 품고 차렸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이 상에 오른 걸 본 경험을 겪은 이라면 알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먹는 순간이 때로 악몽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접시가 비워질 때까지, 전부 열심히 먹어야 한다.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태희에게 만두를 먹였던 할머니와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결국 판잣집이 무너져 세상을 떠난다. 졸지에 천애 고아가 되어 버린 지영은 고양이를 태희에게 맡기고 형식적인 경찰 조서를 쓰러 갔다가 거칠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소년원에 넘겨진다. 태희는 고양이를 비류와 온조에게 맡기고, 풀려난 지영에게 보수 격으로 아버지의 목욕탕에서 빼 온 돈을 가지고 어디라도 떠나자고 제안한다. 한편 요즘 한식 만두는 서민 음식이라는 굴레 탓에 가격을 제대로 올릴 수 없어 맛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됐다. 결은 좀 다르지만 한성칼국수(서울 논현동)와 중식인 연교(연남동)의 만두를 그나마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