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아오면 대통령의 붓글씨가 주요 일간지 지면을 장식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못했기에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듯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알아주는 달필이다. 일필휘지의 ‘위국충정’, ‘북진통일’ 등으로 반공과 국가 수호의 의지를 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탄탄한 국방과 더불어 국가 발전의 열망이 남달랐다. ‘조국 근대화’, ‘중단 없는 전진’ 등 또박또박 박력 있는 글씨를 구사했다. 야당 시절부터 김영삼 대통령은 좌우명 ‘대도무문’이 유명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경천애인’을 즐겨 썼다. 어린 마음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통령의 친필을 얻어 걸어두고 보면 좋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꿨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우리는 신원을 확인받고 안내자를 따라서 현관을 지나 접견실로 들어섰다. 널찍한 방에는 화사한 양란이 가득했다. 벽에는 노벨상 수상 때 사진, 타임 잡지 표지, 외국 정상과의 사진 등이 질서 있게 걸려 있었다. 잠시 사진을 둘러본 후 상석(上席) 옆자리에 궁둥이를 반쯤 걸치고 앉았다. 5분쯤 지났을까, 주인공께서 비서를 앞세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천천히 방으로 들어오셨다. 통역이 뒤를 따랐다. 황급히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 교수구먼.” 악수를 청하며 자리를 권하셨다.
“원래 이런 행사는 잘 응하지 않는데 성의를 봐서 청을 들어주는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저음의 느릿한 전라도 말투와 엷은 미소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감사 인사를 올리고 학회의 성격과 의의 등을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자료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로 당신께서 국제 활동 하시던 옛일을 더듬었는데 내내 총기가 번뜩였다. 기억력이 대단하셨고 대화에 거침이 없었다.
30분이 넘어 끝내야 할 즈음해서 준비한 만년필을 조심스럽게 탁자에 올렸다. “옆에 두고 메모할 때 쓰시면 큰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감사의 눈빛을 보내셨다. 뒤미처 동행한 스웨덴의 학회 임원도 크리스털 액자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요트 타는 노르웨이 국왕 사진이 들어 있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듯했다. “여러 번 하랄 5세를 만났지요. 요트 좋아하고, 참 좋은 분인데.” 스웨덴 친구는 김 전 대통령의 엄청난 국제 인맥에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실는지요. 그런데 지금 드릴까요, 아니면 행사장 청중 앞에서 드릴까요?”
스웨덴 친구의 엉뚱한 질문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속으로 “언짢은 표정이라도 지으면 낭패인데” 하는 찰나, 빙긋이 웃으시며 “주는 사람 마음이지.”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환담을 끝내면서 우리에게 답례품도 주시고 카메라맨을 위해서 자세도 취해 주셨다. 2006년 5월 초의 일이다.
약 30국이 참가하는 ‘제13차 국제 감마나이프 학술대회’(감마나이프란, 머리를 열지 않고 뇌 질환을 치료하는 기계)를 치열한 경쟁 끝에 어렵게 서울에 유치했다. 2002년 프라하 학회에서의 쾌거였다. 학술 프로그램 외에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을 초청해서 특강을 듣는 것이 학회의 전통이었다. 체코 학회에서는 ‘유럽의 양심’으로 불리는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참석했다. 대한민국이 체코에 밀릴 수 없다는 치기가 발동했다. 여러 차례 회의와 숙고 끝에 국제 인지도가 높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을 드리지?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정면 돌파였다. 비서실 주소를 수소문해서 무작정 편지를 띄웠다. 명예대회장 수락과 특강을 부탁드렸고, 자기소개서와 학술대회 성격 등 공을 들여 준비한 관련 자료를 동봉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해가 다 가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일면식도 없고 연줄도 없는데, 콧방귀도 안 뀌시겠지. 아니 진즉에 비서실에서 잘렸을 거야.”
낙담 끝에 차선책을 강구하고 있던 차에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동교동에 근무하는 비서가 요구 사항 수락과 함께 행사 전에 동교동에서 얼굴 한번 보자는 말씀을 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격언을 실감하는 순간. 2006년 5월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마침내 화창한 봄날에 시내 호텔에서 학회가 개막했다. 사흘째 되는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호텔 현관에서 영접했다. 이희호 여사도 함께 오셨다. 한 발짝 뒤에서 모시고 행사장으로 입장하는데 쉴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눈을 바로 뜰 수 없었다. ‘그랜드 볼룸’에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내외신 기자가 운집했다. 공동 대회장인 스웨덴 동료와 좌장을 맡았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남북한 현안에 대한 강의가 30분 넘게 계속됐다. 말씀은 앉아서 진행했고 질의응답도 있었다.
강연 종료 선언에 이어 기념품 증정이 진행됐다. 활짝 웃으며 노르웨이 국왕 사진이 있는 액자를 높이 들어 올리셨다. 다음 날 여러 국내외 신문에 관련 기사가 실렸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의학 학술대회에 특별히 마련한 프로그램은 대성공이었다.
성황리에 학회를 마치고 병원 지하에 있는 감마나이프 치료실 잘 보이는 곳에 액자를 만들어 걸었다. 오고 가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보고 또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다. 간곡히 부탁드려 받은 친필 휘호다. ‘敬天愛人(경천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