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달력에 특별하다 표시된 날이 다가옵니다. 평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해도 유난스럽지 않은 날. 어두운 겨울밤도 마냥 깜깜하지 않고, 코끝에 차가운 바람이 머물지만 따스한 기분이 들어도 이상할 게 없지요. 네, 이제 크리스마스입니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는 모든 이들이 일년 내내 기다리는 가장 큰 명절입니다. 영국민의 46%는 종교적인 이유와는 상관 없이 크리스마스를 즐긴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크리스마스만은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지요. 집집마다 크고 작은 트리를 장식하고 상점과 길거리는 다양한 빛깔로 아름답게 반짝이고요. 각자의 삶에 몰두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마침내 서로를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영국인 1인이 쓰는 카드는 평균 17장으로, 매년 1억5000만장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우편을 통해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내집니다. 음식은 통으로 구워 낸 칠면조 구이 요리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간식으로 말린 건포도와 자두, 와인 및 향신료로 만든 크리스마스 푸딩, 견과류와 말린 과일, 향신료가 들어간 끈적한 파이를 먹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긴 사탕처럼 생긴 ‘크래커’의 양끝을 옆사람과 한쪽씩 잡아당기는 것이 전통입니다. ‘타닥!’ 하는 장작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상자가 벌어지면, 그 안에는 작은 선물과 꼬깃꼬깃 접힌 종이왕관, 그리고 영국식 농담이 적힌 종이가 들어있습니다. (열에 아홉은 무척 썰렁합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색종이 왕관을 펼쳐 머리에 쓰고 이상한 농담을 하며 식사를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몹시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왕실의 풍경은 어떨까요. 왕실에서 전격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족과 가까운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영국 가정의 전통을 따른다고 합니다. 식사 자리에서 교환하는 선물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절대로 비싸서는 안 되고 반드시 웃겨야 하며, 쓸모와는 좀 거리가 있는 물건이어야만 한다고요. 몇 해 전 결혼하기 전 솔로였던 해리 왕자에게 형수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나만의 여자 친구 키우기(Grow Your Own Girlfriend)’ 키트를 선물하고, 해리 왕자는 여왕에게 비속어가 적힌 샤워캡을 선물했다는 것이 알려져 국민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행해지는 여왕의 연설은 인기 있는 이벤트 중 하나로 지난해 여왕의 크리스마스 연설은 2400만명이 시청했습니다. 여왕의 연설은 1957년부터 사망 전까지 계속되었는데, 대개 지나간 해를 돌아보며 주변인들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작가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와 유령의 이야기를 예로 들지 않아도 크리스마스와 친절은 애초에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여겨집니다. 꽉 찬 여인숙의 방을 대신해 주인이 작은 친절을 베풀어 내어준 마구간, 그곳에서 탄생한 존재가 아기 예수니까요. 친절(Kind)의 어근이 ‘친족’과 ‘가족’에서 비롯된 것도 어색하지 않지요. 개인 심리학 이론으로 전체주의를 창시한 얀 크리스천 스머츠(Jan Christian Smuts)는 인간 사회 시스템에서 친절은 필수적이라며, 유대감과 그에 따른 친절의 표현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업적은 협력과 공유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그 예라고 말입니다.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도 중요하다고 노팅엄 대학의 정신 건강 회복 및 사회 통합 교수 마크 슬레이드(Mark Slade)는 말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정신건강을 살피는 분야의 의사들이 가장 바쁜 시기라며, 우리는 스스로를 연민하며 우리 자신에게 온화하려 노력해야 한다고요. 좋은 친구를 대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말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심리 치료사인 켈리 헌(Kelly Hearn)은 크리스마스가 이상적으로 풍요로우며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다고 꼬집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완벽한 식사와 풍부한 선물을 떠올려서는 실패감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요.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저희 가족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모처럼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귀여움을 잔뜩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늘 그리워하던 한국의 맛있는 과일과 붕어빵, 호떡도 잔뜩 먹고요. 지난해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한발짝도 나오지 못했던 기억에 비하면 얼마나 호사스러운 성탄절인지요! 그리하여 다시 한번, 이제 정말 크리스마스입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부디 스스로와 주변인들을 돌보는 친절함으로 가득한, 마음이 풍족하고 따뜻한 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