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편의점은 희비가 엇갈린다. 물론 ‘일반적인’ 편의점은 장사가 잘된다. 맥주 판매가 급증하고, 조각 치킨이 동나고, 마른안주는 물론 떡볶이를 비롯한 즉석식품 판매도 크게 는다. 그런데 오피스 빌딩 안에서 장사하는 편의점은 전혀 반대란 말이지. 맥주는 원래 팔지도 않고, 안주류도 없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고객들이 모두 ‘칼퇴근’을 해버린단 말일세. 그러니 어설프게 신문 보고 “봉 사장, 월드컵 덕분에 편의점은 대박이라며?” 하고 축하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대박이에요, 대박. 옆집이 대박.”
개최지가 어디냐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희비도 엇갈린다. 이번 월드컵처럼 한국과 시차가 그리 크지 않으면 편의점이든 치킨집이든 족발집이든 함께 만세 부른다. 개최지가 러시아였던 2018년에도 괜찮았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2014년) 때는 다들 월드컵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이벤트쯤으로 여겼다. 새벽 5시, 아침 7시가 뭐란 말인가. 어쨌든 그럼에도 편의점은 대체로 월드컵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낮이든 밤이든 응원하려면 뭘 마시든 깨물든 해야 하니까. 선수들은 뛰고, 우리는 들이켠다.
올해는 변수가 하나 생겼다. 조별 리그 2차전 대한민국 대 가나. 가나만은 꼭 이겨야 한다면서 경기 전부터 가나초콜릿을 구입하는 손님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초콜릿을 절반으로 동강 부러뜨려 가나전 승리를 기원하는 ‘부장님 개그’를 SNS에 올린 정치인 또한 있었다. 이러든 저러든 편의점 점주로서는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어 좋으니 배시시 웃었는데, 우아,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포르투갈을 꺾고 가나가 우루과이에 작은 점수 차로 패배해 11% 바늘구멍 확률을 뚫고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가나 만세! 이튿날, 가나초콜릿 매출이 급증했다. 와자작 깨부수는 초콜릿이 아니라 달콤하게 녹여 먹는 초콜릿 본연의 초콜릿이 되었다. 똑같은 존재인데 어제까지는 미움의 대상이었다가 오늘부턴 고마움의 상대라니, 역시 사람의 운명은, 아니 초콜릿의 앞날은 알 수 없는 법이다.
16강은 브라질과 맞붙었다. “어이 김 프로, 축구 어떻게 볼 거야?” “4시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야죠.” “나는 연차 쓰고 광화문 나가서 밤새우려고.” “우아, 열성이시네요.” 새벽 4시 경기를 어디서 어떻게 볼 것인지 손님들이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 편의점 직원들끼리도 3대2, 2대0, 각자 예상 스코어를 내걸었다. “그런데 브라질을 이기면 뭐가 잘 팔리려나요?” 알바 연정씨의 뜬금없는 질문에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글쎄… 브라질 커피?”
예상했던 대로 브라질의 벽은 높았고 16강 고개는 넘지 못했다. 8강에서 일본과 맞붙는다는 세기적인 이벤트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날 새벽 4~6시 편의점엔 손님이 거의 없었고, 7시쯤 되어서야 퀭한 눈빛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에너지 음료와 삼각김밥을 구입한 단골손님에게 넌지시 물었다. “축구 보셨나 봐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손님이 말한다. “그래도 한 골이라도 넣은 게 어디에요.” “맞아요, 16강 올라간 것만 해도 큰 행운이었지.” “오늘도 수고하세요.” “졸지 말고, 파이팅!”
출근 시간이 되자 여느 때처럼 손님이 몰렸다. 2주간 행복했던 축구 여정을 마무리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는 표정이었다. 편의점 매출의 희비 쌍곡선도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 상품에서 저 상품으로 옮겨 가는 순간이다. 맥주는 이제 축구 응원용이 아니라 드라마 감상용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가나초콜릿에서 무려 축구를 연상하는 손님도 급격히 줄어들겠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엇갈리고, 오늘이 ‘옆집의 날’이면 내일은 ‘우리 집의 날’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담담히 견딘다. 축구공은 둥글둥글 둥글고, 삶 또한 그러하더라.
돌아보니 SNS에 정치적인 논쟁으로 으르렁거리던 사람들도 월드컵 기간에는 제가끔 태극 전사가 되어 ‘좋아요’와 ‘힘내요’를 눌러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악다구니가 없었고, 무슨 당이니 계열이니 하는 경계선도 없었으며, 페미니 반(反)페미니 하며 눈을 부릅뜨는 다툼 역시 없었다. “열심히 잘 싸웠으니 됐다”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목소리 또한 왼쪽과 오른쪽이 다를 것이 없더라.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월드컵만 같았으면…. 어쩌면 이 골대에서 저 골대 차이만큼도 아닌 간극을 두고 우리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바꿔 입는 선수들처럼 흐뭇한 페어플레이를 할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순박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나저나 2026년 월드컵은 북아메리카 3국(미국, 캐나다, 멕시코)이 공동 개최하고 16도시에서 경기가 펼쳐진다는데, 거기가 저녁이면 여기는 오전. “아이고야, 맥주는 다 팔았군” 하는 옆 편의점 주인장의 한숨 소리가 그려진다. 하긴 4년 뒤 일을 벌써 떠올려 뭣하랴. 이것 아니면 저것 팔리겠지. 그때는 또 그때의 가나초콜릿이 등장하겠지. 세상은 어김없이 둥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