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민 빵' 바게트. 올해 '바게트빵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로이터

퀴즈 하나. 다음 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과 관계가 없는 음식은?

① 벨기에 맥주 ②이탈리아 나폴리 피자 ③프랑스 바게트 ④태국 똠양꿍

정답은 ④번 똠양꿍이다. 벨기에의 ‘맥주 문화’는 지난 2016년에, 이탈리아의 ‘나폴리 피자 만들기 기술’은 2017년에 각각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프랑스의 ‘바게트빵 문화와 장인의 노하우’는 올해 새로 목록에 올랐고, 태국의 ‘똠양꿍 문화’는 태국 정부가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유네스코에 공식 신청을 하지 않았다.

◇‘바게트’가 아니라 ‘바게트빵 문화’

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는 프랑스의 ‘바게트빵 문화’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식(食)문화’ 9건이 한꺼번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는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3일까지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의 탈춤’ 등 총 39건을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새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에서 ‘먹고 마시는’ 유산이 9건이나 올라 역대 어느 해보다 많았다. 북한의 ‘평양랭면 풍습’, 중국의 ‘전통 차(茶) 제조기술과 관련 풍습’,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울라니 커피 원두 재배 지식 및 풍습’, 슬로베니아의 ‘삶의 방식인 양봉’ 등 지역 특유의 음식 문화가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됐다.

올해 새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튀니지의 '하리사(Harissa), 지식, 기술, 요리 및 사회적 관습'. 사진은 튀니지의 여성이 고추를 말리고 씨를 제거해 하리사 소스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중요한 건 ‘음식’(유형유산)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는 문화’(무형유산)가 등재됐다는 것.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 빵’ 바게트(baguette)가 아니라 바게트빵을 즐기는 문화와 장인의 제조 기법이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는 얘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등재가 결정되자 소셜미디어에 “바게트는 우리의 일상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250g의 마법”이라고 썼고,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인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바게트는 매일 하는 의식이자, 식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미래에도 장인 정신과 사회적 관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등재한 ‘평양랭면 풍습’에 대해 유네스코는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전통 민속 요리”라며 “장수·행복·환대·유쾌함·친근함과 관련이 있으며,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가족과 이웃이 모여 즐기며 삶이 면발만큼 길기를 기원한다. 문화적 정체성과 연속성을 증진하고 사회적 조화와 결속에 기여했다”고 의미를 평가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북부 크로아티아의 생강 쿠키 제빵 기술'. 중세시대에 유럽 일부 수도원에서 등장했던 생강 쿠키 제빵의 전통이 크로아티아로 건너와 기술이 되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각국, 식문화 등재 경쟁

음식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건 지난 2010년부터. 그해 프랑스·멕시코의 ‘음식문화’가 각각 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각국의 ‘식문화’ 등재 경쟁이 치열해졌다. ‘프랑스 사람들의 아름다운 식사’라는 명칭으로 등재된 프랑스 식문화는 그릇·숟가락·나이프·포크를 놓는 방식까지 포함됐다. 멕시코 전통 요리는 옥수수·콩·칠리 등 작물 재배 방식부터 식사 방법까지 포함된 문화다.

우리나라의 ‘김장 문화’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김치’가 아니라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 문화’다. 유네스코는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며 연대감과 정체성을 높일 수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북한도 2015년 ‘김치 담그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등재에 성공했다. 남북한을 합하면 이번 ‘평양랭면 풍습’까지 모두 3건의 음식 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벨기에 맥주 문화'. /유네스코 홈페이지

벨기에는 ‘맥주 문화’를 등재했다. 인구 11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에 약 200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고, 서로 다른 발효 비법으로 생산하는 맥주가 1500종이나 된다. 유네스코는 “벨기에 전역에서 맥주를 만들고 음미하는 것이 공동체의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피자 만들기 기술’은 수차례 고배 끝에 목록에 올랐다. 16세기에 시작한 장인의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면서 지역 주민 모두가 이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일본의 전통적 식문화인 ‘와쇼쿠(和食), 전통적인 정월 음식 문화’는 2013년 목록에 올랐다. 와쇼쿠는 ‘자연을 존중하는 일본인의 정신을 체현한 것으로, 식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관습’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 사용,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 변화를 표현하는 장식, 정월 등 연중행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폴리 피자 만들기 기술'은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역사가 6000년으로 추산되는 조지아의 ‘전통 와인 제조법’도 유네스코 유산이다. 조지아에서는 수확한 포도를 송이째 도기(크베브리 항아리)에 넣고 봉인해 와인을 만든다. 도기에 밀랍을 바르는 것도 특징이다. 여과하지 않고 커피를 끓여 마신 후 잔에 남는 찌꺼기로 운세를 가늠하는 튀르키예의 ‘커피 문화와 전통’도 보존해야 할 인류의 유산으로 등재됐다.

◇상업화는 경계해야

각국이 치열하게 추진하는 만큼, 등재가 결정되는 회의장 열기도 뜨겁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등재에 성공하는 나라는 축제 분위기라 미리 준비한 음식을 돌리기도 한다. 아르메니아는 얇고 납작한 전통 빵인 ‘라바시 만들기’가 등재됐을 때 빵을 돌렸고, 터키는 ‘커피 문화’ 등재 당시 뜨거운 커피를 나눠줬다”며 “우리도 ‘김장 문화’를 등재할 때 김치를 맛보라고 나눠주고 싶었지만, 당시 아제르바이잔 회의장이 너무 고급 호텔이라 김치 국물이 떨어질까 봐 포기했다”는 뒷얘기를 전했다.

커피를 마신 후, 찌꺼기로 그날의 운세를 가늠하는 터키의 커피 문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음식을 이용한 상업화도 경계 대상이다. 김지현 건국대 세계유산대학원 겸임교수는 “2010년 처음으로 프랑스 식문화가 등재됐을 때만 해도 프랑스 식당들이 유네스코 로고를 쓰며 홍보해서 상업화 논란이 제기됐고, 이후 식문화 등재를 자제시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음식이 곧 문화정체성이자 외교 자산이라는 데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나라 고유 문화라 해도 특정 계층만 누렸다면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등재되기 어렵다. 조선왕조 궁중 음식은 ‘향유층이 넓지 않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논의 과정에서 탈락했다. 그렇다면, 다시 퀴즈. 전국 모든 세대가 맛보고 즐기는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는? 정답은 ‘장(醬)’. 문화재청은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한국의 전통 장 문화’를 차기 신청 대상으로 유네스코에 제출했고, 2024년 등재가 결정된다.